'흑금성 박채서'가 만난 김정일&총풍 비하인드

“1997년 ‘총질 대가’로 南이 北에 1억 달러 제안했다”

김혜연 기자 | 기사입력 2018/08/30 [18:12]

'흑금성 박채서'가 만난 김정일&총풍 비하인드

“1997년 ‘총질 대가’로 南이 北에 1억 달러 제안했다”

김혜연 기자 | 입력 : 2018/08/30 [18:12]

휴전선 일대 전쟁 준하는 상황남측 요청 불구 적당히 총질

총선 압승 땐 YS정부 자신감 충천 남북대화 버거워질까 염려

 

▲ 영화 '공작'의 실제 주인공 박채서씨는 8월17일 오전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가진 인터뷰에서는 특수 공작원 출신으로 유일하게 북한의 1인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직접 만나고 1997년 총풍을 막아낸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흥미진진하게 풀어헤쳐 화제를 모았다. 사진은 박씨가 MBN 프로그램에 출연한 모습.    

 

영화 공작의 실제 주인공 박채서씨는 1993년부터 5년간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지금의 국정원) 대북공작원으로 살았다.

 

그의 실체는 15대 대선 이듬해인 1998년 공개됐다. 박씨는 그때서야 자신의 코드네임이 흑금성이란 걸 알게 됐다고 한다. 대북공작원으로 얼굴을 숨기고 활약할 당시 그의 나이는 37세였으나 박씨는 최근 64세의 나이로 얼굴을 드러내고 언론과 몇 차례 인터뷰도 했다.

 

그는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을 들락날락한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다고 술회하면서 평양에서 비행기를 타고 압록강을 넘었다는 안내방송이 나오면 그제서야 안심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지난 817일 오전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가진 인터뷰에서는 특수 공작원 출신으로 유일하게 북한의 1인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직접 만나고 1997년 총풍을 막아낸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흥미진진하게 풀어헤쳐 화제를 모았다.

 

그는 김정일과의 만남에 대해 어려서부터 반공 교육을 받을 때 김정일은 황태자같이이런 이야기도 기억난다면서도 하지만 북한 수뇌부와 얘기를 하는 과정에서 들은 이야기, 짧은 시간 동안 직접 만나서 느꼈던 개인 감정은 상당히 사고의 유연성을 가진 사람이었고 결단력이 있는 사람으로 느껴졌다고 밝히기도. tbs와 박채서씨의 인터뷰 중 핵심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박채서씨는 지난 817일 오전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보자는 감독의 제안을 처음에는 거부했다면서 그전에도 대여섯 번 그런 제의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내가 사회에 그렇게 쓰이는 게 싫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수감 생활 당시 딸로부터 도서 <공작>을 집필한 언론인 김당씨가 영화화 추천을 했다는 말을 듣고 그러면 그냥 무조건 하자고 했다고 털어놨다.

 

박씨는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0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됐고, 2016년 만기 출소했다.

 

사실 윤성빈 감독이 공작영화 준비를 처음 시도하던 때는 박근혜 정부 집권 4년차인 2016년이었다.

 

박씨는 그런 만큼 과연 이때 내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이런 의문점이 솔직히 있었다면서 제작사의 한재덕 대표나 윤종빈 감독이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단순한 용기를 넘어서 보통의 의지가 아니면 못하는 것이다. 그런 면이 상당히 고마웠다고 술회했다.

 

영화에선 총풍 대가 400만 달러로 그렸지만 실제론 1억 달러

‘1억 달러연루된 정치권 인사들 당국 조사과정에서 빼준 의혹

    

그는 영화와 사실이 다른 대목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을 받자 당시 코너에 몰린 안기부가 자신의 북파공작원 신분을 노출시킨 대목을 꼽았다. 박씨는 "내 신분이 폭로됐을 때 나는 영화 속 장면처럼 북한에 있었던 건 아니다면서 윤 감독님이 극적 효과를 위해서 북에 있는 걸로 했는데 실제로도 그 당시는 영화만큼이나 긴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저간의 사정에 대해 “329(남북 합작 CF 촬영 준비를 위해)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서 그 당시 MBC 사장 그리고 대표단 27명이 판문점으로 들어가기로 다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소개하면서 정부 허가도 받고, 방문증도 받고, 교육도 받고. 그래서 딱 MBC에서 생방송을 하면서 들어가려고 했던 것인데, 방북 약 일주일 전에 사건이 터졌다고 긴박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박씨는 만약 우리가 정상적으로 방북한 후 그 사건(안기부의 북파공작원 신분 폭로)이 터졌으면 나는 말할 것도 없고 27명 전부가 그쪽에 억류됐을 정도로 상당히 중요한 사건이었다면서 그만큼 긴박한 상황이었는데 윤종빈 감독이 (북한 장면을 넣어)극적인 효과를 (잘 살렸다)”고 평가했다.

 

그런가 하면 1996년 총선 직전 당시 여당이 북측 비무장지대에서 도발을 해줄 것을 주문한 이른바 총풍 사건을 인지한 배경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한미합동공작대에 있을 때 미국 측과 우리하고 중간에 협조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한 45년을 미국하고 같이 일했던 분이다. (한미합동공작대에)근무할 당시 우연히 미국 측에서 첩보를 입수해서 인지했던 상황이고후에 북한 접촉을 하면서 그 내용을 깊숙하게 파봤다. 그랬더니 이게 바깥으로 드러난 이유가 보니까 북쪽의 불만 때문에 그랬더라고. 원래 그런 사건, 총풍을 일으켜 주면 그 다음에 어떻게 하겠다는 대가가 있었는데 약속된 대가의 반도 안 온 것이다. 그러니까 불만을 품고 (북측이)그것을 흘린 거더라. 그런데 여기서 주겠다는 약속을 안 지킨 이유는 본인들이 여기서 요구한 쪽에서 요구한 대로 다 안 해준 거다, 북에서는.”

 

박씨는 “(남북이)서로 약속을 안 지켰고 그 과정에서 이게(총풍 사건) 불거져 나온 것이라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털어놨다.

 

박씨는 또한 1997년 직전 남측에서 북측에 400만 달러를 주고 휴전선과 서해5도에서 거의 국지전급 총격을 일으켜 달라고 한 거래를 인지하게 된다. 영화 속에서도 당시 여당이 북측에 400만 달러를 건넨 것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박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전면전에 준하는 긴장감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 공식적인 얘기였고, 그렇게 했을 경우 이쪽(남측)에서 제시한 액수가 1억 달러였다면서 1억 달러 보상금 약속의 실체를 폭로했다.

 

그러면서 영화 속에서는 400만 달러로 그린 것에 대해 그런 얘기를 (그대로 전하면)아마 우리 (국민들에게)충격이 있을 것 같으니까 윤 감독이 상징적으로 400만 달러를 주겠다고 약속한(장면으로 그렸다)”고 소개했다.

 

1997년 당시 북측 강경한 반공책 쓸 확률김대중 당선 견제

정치적으로 노련하고 김정일보다 키 커 상대하기 버겁다 거부감

북한이 가장 원한 건 이인제부친 친일 전력 이회창도 거부감   

 

박씨는 1997년 대선 직전 당시 여당의 국지전 주문과 관련해 놀라운 사실도 폭로했다.

 

그리고 이렇게 얘기를 했다. ‘휴전선 일대에서 전쟁에 준하는 상황을 만들어 달라.’ 그와 같은 것은 1996년도 총선 때도 요구했던 상황인데 그냥 판문점에서 일개 중대가 그냥 조금 해줘 버린 거다. 북한이 만만치 않다. (나중에)왜 그랬냐 했더니 그렇게 요구한 대로 해줘서 김영삼 정부가 압승하게 되면 자신감 때문에 자기들하고 남북 대화를 하는 데 버겁다는 거다. 그러니까 적당히만 해주겠다.전면전에 준하는 긴장감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 공식적인 얘기였고, 그렇게 했을 경우 이쪽에서 제시한 액수가 1억 달러였다. 1억 달러를 보상금으로 주겠다.”

 

박씨는 이어 북에도 엘리트 그룹이 있다면서 그들에게 얘기를 많이 했다고도 밝혔다.

 

그는 만약에 김대중 후보가 당선된다면 당신들이 바라는 그런 상황이 오지 않는다면서 김 후보도 사람인데, 그렇게까지 방해를 한 상대에 대해서 개인적인 감정이 없겠느냐? 그게 정책으로 분명히 반영된다. 그럼 남북관계가 좋아지겠느냐고 설득한 스토리도 소개했다.

 

아울러 진행자가 국지전 거래사건 당시 (중국에)몇 명이 갔느냐고 질문하자 내가 그때 기억하기로는 3명이었던 것 같고, 실제는 장모, 한모 이렇게 알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곁가지에 불과하고 실질적인 총풍의 본체는 외교안보특보를 했던 일행들, 당시 현역 국회의원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국회의원들이 당시 북경 장성호텔에서 안병수, 강덕순을 만나서 공식 요청한 것이라면서 그때 이미 (착수금조로)400만 달러에 해당되는 현금을 줬다고 밝혔다. 이어 휴전선에서 전면전에 준하는 도발을 해달라. 그렇게만 해준다면 우리가 1억 달러를 주겠다?’라는 진행자의 확인 질문에 대해 그 내용은 공작 보고서에 아마 그대로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면서 자신의 기억이 팩트’임을 강조했다.

 

박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1997년 대선 당시 북한이 DJ 당선을 반대한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소개했다.

 

"그 내용(당시 북한이 김대중 후보를 거부한)을 그때 북한 고위직들과 얘기를 해보니까 간단하게 답이 나오더라. ‘지금 말씀하신 대로 빨갱이 몰려서 당선이 되면 박정희같이 반대로 자기 어떤 정당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강경한 반공책을 쓸 확률이 있다는 게 북한의 분석이었다. 두 번째는 이 사람(김대중 후보)이 국제적인 인물이고 상당히 정치적으로 노련한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상대하기가 버겁다, 부담된다. 대내외적으로 북한이 계속 김대중 선생은 민주투사라고 했는데 갑자기 김대중을 비하할 명분이 없다는 거였다. 또 한 가지는 우스갯소리로 키가 김정일 위원장보다 크다는 거부의 이유 중 하나로 댔다."

 

"북한은 당시 대선 후보 세 명 중 김대중 후보를 제일 원하지 않았다. 제일 원했던 건 이인제 후보였고, (김정일과) 이인제는 키도 똑같다고 하더라. 선친의 친일 경력을 들어 이회창 후보는 두 번째로 밀렸다. 당시 청와대는 이회창 후보가 아니라 이인제 후보를 밀었는데 웃겼던 건 대통령이 임명한 안기부장은 또 이회창씨를 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정권 바뀐 후 이중간첩 누명하다하다 안 되니 '작계' 줬다고 우겨

북한 지도자 3인 중 남북관계 풀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은 김정일

 

박씨는 영화 속 장면처럼 실제 김정일을 두 차례 만났다. 그는 자신이 만난 김정일은 사고가 유연한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직접 만나고 상대한 당시 김정일 위원장을 있는 그대로 보자면 어떤 사람이었느냐”고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우리들은 어려서부터 반공 교육을 받을 때 김정일은 황태자같이. 이런 이야기도 기억한다. 김일성 대학 앞에 기다렸다가 좋아하는 여학생들 잡아다가 욕심을 채운다, 이런 것까지도."

 

"그런데 북한 수뇌부와 얘기를 하는 과정에서 들은 이야기, 그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직접 짧은 시간 동안 한 30분 만나서 느꼈던 개인 감정은 상당히 사고의 유연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 사람이 예술을 사랑한달까, 심취해 있는 사람 아니겠는가? 예술적인 사람 치고 성격이 난폭한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런데 첫째는 결단력이 있는 사람, 내가 얘기를 하면 광고 문제도 흔쾌히 결단을 내리더라. 그리고 기타 다른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본심을 드러내고 딱 나한테도 부탁하는 건 부탁하고 도와 달라는 건 도와 달라고 얘기를 하고.

 

첫째 말하는 데 있어서 일목요연하게 얘기를 한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기보다 그 말을 끌어나가더라. 그런 순간순간 단면을 보면서, 논리적이고, 결단력도 있고, 그러면서도 유한 면이 있고 이런 여유가 있고 하는 걸 보고 , 그래서 저 사람이 오랫동안 북한 체제를 유치하고 통치하는구나이런 생각이 들었다.

 

종합해 보면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남북관계나 이런 데서 역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중에서 내가 판단할 때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지 않나. 왜냐하면 사고의 유연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나중에 물론 업무가 과도해서 멘붕 상태가 오는, 그런 상황도 온다. 그것이 김용순 비서를 죽이고 장성택씨를 연금시키면부터 업무가 과도하게 자기한테 전부 쏠리기 시작한 거다. 그때부터 업무 과다로 인해서 아마 정신적인 공황을 많이 겪은 것 같다.

 

당시 (나와)대화하는 사람들이 그 말을 하더라. 그전에는 안 그랬는데 보고가 들어가면 멍하게 있는 게 보인다는 거였다. 왜냐하면 그전에는 대내 문제는 장성택이 80%의 결재를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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