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느끼고, 즐기는 우리 음식 문화사<1>

푸짐한 설렁탕 인심 뒤 진국 같은 '국민화합의 역사' 아시나요?

강지원 기자 | 기사입력 2018/08/31 [17:15]

보고, 느끼고, 즐기는 우리 음식 문화사<1>

푸짐한 설렁탕 인심 뒤 진국 같은 '국민화합의 역사' 아시나요?

강지원 기자 | 입력 : 2018/08/31 [17:15]

세계에서 가장 음식 종류가 많고 다양한 조립법이 존재하는 나라를 중국이라고 하지만 이는 크게 잘못된 말이다. 중국은 음식을 먼저 튀긴 뒤 다시 찌거나 볶고, 아니면 그저 굽는 요리밖에는 없다. 조리법 중에서 가장 단순한 것이다. 물론 매우 많은 종류의 음식들이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한국은 음식의 조리법이 세계 그 어느 나라들과도 판이하게 다르다. 같은 것도 있지만 매우 다른 것들이 부지기수다. 이번 주부터 한국의 다양한 요리와 더불어 팔도 맛자랑 멋자랑을 떠나보자.

 


▲ 설렁탕에서 진하게 풍기는 문화는 ‘어우러짐’이다. 진하게 우려낸 뼈 국물과 쫀득쫀득한 맛의 수육, 상큼한 맛을 더해주는 파의 절묘한 조화가 빚어내는 맛은 그야말로 최고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 사진출처=Pixabay>


문화는 다양성을 추구한다. 모든 것이 문화 안에 포함되기 때문. 세계 여행에 있어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 나라의 먹을거리. 그 나라 그 민족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진정한 문화의 향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2천년 수도 서울의 대표음식

 

우리의 수도인 서울은 백제 500년을 포함하면 무려 1000년 이상 도읍지로 발전을 해온 만큼 먹을거리 문화도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조선 500년 동안 왕과 백성이 하나 되는 음식이었던 설렁탕만큼 진국인 음식도 없다.

 

설렁탕에서 진하게 풍기는 문화는 어우러짐이다. 진하게 우려낸 뼈 국물과 쫀득쫀득한 맛의 수육, 상큼한 맛을 더해주는 파의 절묘한 조화가 빚어내는 맛은 그야말로 최고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긴 역사만큼 설렁탕 맛을 자랑하는 집들도 꽤 된다. 을지로·종로·강남·모래내 등 서울 전역에 걸쳐 유명하고 맛있는 설렁탕집들이 많다. 나름대로의 특색을 갖추고 있지만 맛이나 양이나 모든 게 푸짐하다’ ‘진국이다는 말로 표현하면 더 이상 수식어가 필요 없을 정도.

 

이러한 설렁탕이 만들어진 것은 바로 서울 흥인지문 밖의(오늘날 동대문구) ‘선농단에서 비롯되었다. 우리에게는 종묘사직이라는 말이 있다. 왕이 거처하는 궁궐 동쪽에는 왕실 조상들을 모신 종묘를 서쪽에는 땅의 신을 모시는 사직단을 세워 연 중 행사로 제를 올렸다.

 

조선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은 농업이었기에 땅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고 나서 왕은 곧바로 궁성의 동쪽 끝자락에 있는 선농단으로 향한다. 바로 농사의 신에게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제사를 드리는 단이다.

 

왕은 연중 곡우 무렵 선농단에서 제를 올리면서 한 해 농사 무병대풍을 기원했다. 이때만큼은 왕과 신하와 백성들이 하나가 되었다. 제사의 제물로는 농사의 상징인 소를 사용했다. 손 한 마리를 잡아 신에게 바친 것.

 

국민 화합 최고의 음식

 

제사가 끝난 뒤 왕은 제물로 사용한 소를 백성들에게 고루 나눠 주고 자신도 먹었다. 하지만 소 한 마리로 참석한 백성들을 풍족하게 먹일 수는 없는 것. 이 때문에 고안된 음식이 바로 설렁탕이다. 소의 뼈를 발라 국물을 우려내고 나머지 고기는 푹 삶아 수육으로 사용한 것. 국물에 수육을 얹고 밥을 말아 백성들과 함께 먹던 음식이 바로 설렁탕이다. 아직도 많은 업소에서 설농탕’ ‘선농탕이라고 사용하고 있는 것은 이때 선농단에서 먹던 이라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설렁탕은 매우 의미가 깊은 음식이다. 그 안에는 진한 국물처럼 하나가 되자라는 뜻이 담겨 있다. 요즘처럼 자신만 위하려는 사고관념이 팽배한 사회에서는 설렁탕의 어우러짐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한번쯤 자신이 너무 되바라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고 서로 어울렸을 때 자신의 독창성도 전문성도 빛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렁탕은 가마솥에서 진하게 우러난 국물로서 대신 전해주고 있다.

 

설렁탕의 어원

 

설렁탕이 어디에서 비롯됐느냐를 두고 국어학자들 간에 말이 많다. 무조건 외국에서 들어와야 직성이 풀리는 학자들은 설렁탕 역시 그 기원을 몽골에서 찾는다. 고려시절 몽골의 곰탕인 슈루혹은 슐루가 들어와 설렁탕으로 바뀌었다는 것. 그러나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경우다.

 

첫째로 설렁탕은 서울지역의 음식이다. 충청도·경상도·전라도·제주도·평안도·함경도 등 전국에서 유명한 음식이 아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오늘날의 경우만 두고 전국 유명음식으로 간주하는 것은 물론 고려시절부터 설렁탕이라고 불렸다는 그릇된 학설을 내놓았다.

 

음식문화로 구분했을 때 유목국가인 몽골은 장시간 음식을 끓이거나 조리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기 어렵다. 고깃국처럼 끓여먹는 음식들은 꽤 많다. 하지만 설렁탕처럼 뼈를 고아 거기에 고기를 넣고 밥을 말아 먹는 음식은 세계 어느 구석에도 한국을 빼면 보이지 않는다.

 

몽골의 영향을 받은 음식이 설렁탕이라면 조선의 음식사전인 디미방 등에 기록돼야 하지만 보이지도 않는다.

둘째로 고려가 몽골의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지만 몽골 사람들이 고려를 지배한 것은 아니었다. 결혼을 통해 몽골은 고려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그것도 공물과 공녀가 대부분이었다.

 

왕족과 귀족 등에 몽골식 옷과 머리모양(변발) 풍속이 유행했지만 모두 그런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고려가 몽골의 속국으로 있었던 것은 60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처럼 음식 문화가 빠르게 번지는 것도 아닌데 몽골 음식이 정착되어 21세기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가설을 세우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셋째로 서울의 대표음식인 설렁탕은 선농탕으로 불렸고, 왕이 소를 잡아 끓인 뒤 백성과 함께 먹었다는 기록은 물론 오늘날에도 선농제가 이어지고 있다. 설렁탕에 대한 여러 가지 어원설은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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