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손학규-정동영’ 정치권에 부는 ‘올드보이 전성시대’

“늙었다고 놀리지 말아요, 경험 많아 협치 잘하고~”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8/09/11 [09:46]

‘이해찬-손학규-정동영’ 정치권에 부는 ‘올드보이 전성시대’

“늙었다고 놀리지 말아요, 경험 많아 협치 잘하고~”

김범준 기자 | 입력 : 2018/09/11 [09:46]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이 전당대회를 마무리 지으면서 여야 5당 대표 체제가 진용을 갖췄다. 정치권에서 ‘젊은 피’로 통하는 이정미 정의당 대표를 제외하면, 모두 60대 중반에서 70대의 연령으로서 ‘올드보이’라고 불린다. 물론 이들은 ‘올드하다’라는 말을 듣기 꺼려할지 모르겠지만, 10여년 보다도 더 전부터 ‘대선주자’로 지목되며 활동한 정치인들이기에 더더욱 ‘과거 정치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정치일선에 선 이해찬·손학규·정동영…올드보이 컴백
2007년 대선경선서 맞붙은 3인…‘치열 수 싸움’ 예고
최대 관심 사항은 선거제도 개편…소득주도성장 갈등
자유한국당 유행 편승?…‘홍준표·김무성·황교안’ 시동

 

▲ 이정미 정의당, 손학규 바른미래당,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문희상 국회의장,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포토타임을 가지고 있다. <김상문 기자>

 

바른미래당의 9·2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손학규 신임대표가 다음날부터 공식 업무를 시작하면서 여의도에 ‘올드보이 시대’가 활짝 열렸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에 이어 손 대표까지 가세하면서 ‘경륜의 정치’가 ‘여야 협치’로 이어질지 관심이 모인다.

 

‘이·손·정’의 인연


일단 정치권에선 이해찬·손학규·정동영 세 대표의 인연부터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대표와 손 대표의 인연은 질기다. 정치권 입문 전 민주화운동에 투신해 수배되고 옥고를 치른 점에서 겹친다. 이들의 길이 달라진 건 1980년부터다. 이 대표가 그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된 반면 다섯살 위인 손 대표는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이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에 따라, 손 대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한나라당에서 건너온 손 대표가 2008년 대통합민주신당 대표가 되자 당시 5선 의원이던 이 대표가 즉시 탈당계를 내기도 했다.


정동영 대표를 비롯한 세 사람은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선거 후보를 뽑는 당내 경선에서 맞붙은 경쟁자였다.

 

당시 경선규칙을 정하는 데부터 갈등을 빚었고, 경선이 조직·동원선거 양상으로 흐르며 당내 분란을 낳았다.


손학규 진영과 정동영 진영이 조직 동원 문제로 몸싸움 충돌을 벌인 일도 있다. 정동영 대표가 당시 두 후보를 제치고 대선 후보에 선출됐지만, 당 분열 후유증까지 겹치면서 본선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크게 졌다.


대선주자로 나서며 정치인생 절정에 섰던 세 정치인이 정치적 부침을 거듭하다 11년 만에 중앙정치 한복판에서 협치 파트너로 재회하게 됐다. 세 사람이 호출된 이유는 당 사정에 따라 다르다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은 당이 더 강한 개혁에 나서달라는 요구를 이해찬에게 담아낸 것이다. 바른미래당은 이제 그만 논쟁하고 당을 통합해달라는 요구가 손학규에게 담겼다고 본다. 정동영을 뽑은 민주평화당은 강한 ‘인물론’을 통해 독자 생존 의지를 표출한 걸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관심과제 선거제도


이처럼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까지 포함해 여야 수장들의 정치적 경륜에 대한 기대감도 나오지만, 관록의 정치인들이 깃발을 들었다고 해서 더 나은 정치로 이어질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실제로 정치권 안팎에서는 ‘정치 8단’의 경륜이 난마처럼 얽힌 정치판을 정리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지만, 노회한 이들의 정치적 욕심이 교착 국면을 장기화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손 대표가 지난 9월3일 문희상 국회의장을 만나 표현한 대로 “올드보이(Old boy)가 아닌 골드보이(Gold boy)”들로 자리매김하려면 협치를 통해 성과를 내는 국회로 이끌어가야 한다. 세 대표를 모두 잘 아는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서로 이해하는 영역이 넓고, 국민을 향해 펼치는 정치를 할 분들이어서 여야가 합리적 경쟁을 할 토대가 만들어졌다”며 “선거도 한참 남았기 때문에 안정감 있는 정치인들이 민생을 위한 정치를 펼 때”라고 말했다.


하지만 협치 성과를 내는 ‘골드보이 정치’로 나아가려면 우선 당내 통합이란 과제부터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정치평론가는 “올드보이라고 해서 모두 당 장악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해찬 대표는 어느 정도 당을 장악하고 있는 걸로 보이지만 손학규·정동영 대표는 당내 최대주주라고 말하기 어렵다”며 “각 대표들이 당을 장악해야 협상력도 높아진다”고 짚었다. 정 대표는 취임 뒤 ‘진보·개혁’ 노선을 내세우지만 당내에선 아직 노선 문제가 정리되지 않았다. 손 대표도 당 내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출신들의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


당 내부의 갈등을 해결한다면 이제 정치 이슈에 대한 꼬인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 올드보이들이 우선 주목하는 의제는 선거제도 개편이다. 내후년 총선을 앞둔 바른미래당과 평화당 입장에서는 존폐가 걸려 있는 문제다. 여소야대 국회의 여당으로서도 집권 2년차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이들과 협치가 필수불가결이기 때문에 주요하게 다룰 수밖에 없다.


바른미래당 손 대표는 이날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다당제 합의제를 가능하게 하는 선거구제 개편에 대해서 적극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손 대표는 이날 CBS 라디오에선 “협치라는 것은 당 대표들 간의 이야기가 아니고 대통령의 결심 사항”이라고 했다. 여권이 요구하는 국정협조의 조건으로 선거구제 개편을 내건 뉘앙스다.


평화당 정 대표도 협치의 조건으로 선거구제 개편 논의에 나설 것을 거듭 압박하고 있다. 다만 손 대표가 ‘선 선거제 후 개헌’이라면, 정 대표는 ‘동력을 상실한 개헌보다 선거제 개혁에 매진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온도차가 있다. 반면 민주당 이 대표는 ‘4년 중임 대통령제 개헌 전제로 선거제도 개편 논의’를 제시했다. 두 당이 요구하는 선거구제 개편에 응할 가능성을 열어놓으면서도 개헌이라는 전제조건을 덧붙인 것이다. 개헌도 하자는 손 대표와 개헌은 미뤄두자는 정 대표 틈을 벌리는 등 두 당의 선거구제 개편 공세를 흩트리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선거제 논의가 장기 전략과 연계돼 있다면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과 경제정책 등을 놓고 벌이는 국지전도 관심을 끈다.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는 소득주도성장이다. 손 대표는 CBS 라디오에서 “대통령이 ‘소득주도성장 잘못된 게 없다’고 나가는 상태에서는 협치가 안된다”며 수정론을 폈다. 정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가파른 집값 상승세를 비판하며 “소득주도성장이 불로소득주도성장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반면 이 대표는 잇따른 당·정·청 협의회 자리에서 ‘흔들림 없는 소득주도성장’ 원칙을 확고히 했다. 소득주도성장의 보완 필요성을 제기하는 여권 일각의 이견을 누르고, 오히려 소득주도성장의 속도를 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소득주도성장은 정부 경제정책의 근간인 데다, 지지층의 결속과도 연결된 것인 만큼 야권 흔들기를 뿌리부터 잘라야 한다는 생각도 했음직하다. 지지층 이완으로 어려움을 겪은 노무현 정부 시절을 되새겼을 수도 있다.


4·27 판문점선언 비준동의 문제는 올드보이들의 정치력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이날 야당에 “(9월)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을 처리해 적극 나서줄 것을 요청드린다”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선을 계승하겠다고 한 평화당은 지지 입장이다. 이 대표로선 평화당과 정의당을 묶어 비준을 추진할 수 있지만 잠재적 협치 대상인 바른미래당을 설득해야 한다.


바른미래당 손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한 사실을 전하면서 “내가 남북관계·평화를 위해 수고하신다, 나도 적극 지지한다는 말씀을 드렸다”고만 했다. 국회 비준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이다. 선거구제 개편 등 다른 쟁점들과 묶어서 협상하겠다는 뉘앙스로 읽힌다.


이같은 노회한 올드보이들은 화기애애한 첫 만남을 가졌지만, 그 속에서도 경륜을 뽐내는 기싸움을 벌였다.

 

▲ 지난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 합동 토론회에서 맞붙은 정동영·이해찬·손학규. <국회사진기자단>

 

골드보이의 첫만남


여야 5당 대표는 지난 9월5일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협치 국회’를 만들자며 월 1회 정례회동을 갖기로 합의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전성기를 누리며 직간접적 인연을 공유한 이들 대표들은 ‘초월회’라는 이름도 지어냈다. 당과 정파를 초월하자는 의미여서 여의도에 모처럼 ‘정치’가 살아날 것이란 기대감을 키웠다.


대표들은 문희상 국회의장 초청으로 국회 사랑재에서 오찬 회동을 갖고 정국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평화당의 새 지도부가 선출된 뒤 여야 5당 대표가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 자리가 처음이다.


여야 대표들은 이 자리에서 모임을 정례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해찬 대표는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오늘은 상견례를 겸해서 일반적인 이야기를 했다”며 “매월 첫째주 월요일 점심에 한 달에 한 번씩 만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문 의장은 앞서 모두발언에서 “앞으로 모임을 정례화했으면 한다”며 “여기 계신 분들과 시대적 소명을 같이 할 수 있으면 대한민국이 크게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여야 대표들은 ‘올드보이’라는 지적을 의식한 듯 이를 화제로 농담을 주고받았다. 문 의장은 “아까 이정미 대표가 올드보이 이야기를 했는데, 이 대표가 제일 오래됐다”고 말하자, 이정미 대표는 “제가 어디 가서 올드하다는 얘기를 듣기에는 (젊다)”면서 “올드보이의 귀환이라고 하는데 골드보이들이니 협치가 잘 됐으면 좋겠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문 의장과 이해찬 대표, 김 위원장, 정 대표의 공통분모인 노무현 전 대통령도 언급됐다. 노무현 정부에서 문 의장은 대통령 비서실장을, 이 대표는 국무총리, 김 위원장은 청와대 정책실장, 정 대표는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손 대표는 “문 의장은 제가 경기지사로 있을 때 규제개혁 때문에 노 대통령을 뵙고 싶다고 했는데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자리를 마련해주셨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도 유행편승?


이처럼 이해찬·손학규·정동영 대표 등 여야 정당에서 '올드보이'들이 나서면서 자유한국당에서도 홍준표 전 대표, 김무성 전 대표, 황교안 전 국무총리 등 인물들이 전면 복귀 채비를 하고 있는 모양새다.


한국당에 따르면 당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홍 전 대표가 페이스북을 통해 가장 두드러지게 활동하고 있다.


홍 전 대표는 지난 9월2일 페이스북을 통해 “무지하게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 한국 언론의 현 주소인 상황에서 국민과 직접 소통하기 위해서라도 페이스북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며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하겠단 뜻을 밝혔다.


홍 전 대표는 지난 6·13 지방선거 참패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6월27일 “페이스북 정치는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밝혔다.


하지만 7월11일 미국으로 떠난 뒤에도 문재인 정부의 안보정책과 경제정책 등 국내 현안에 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가 지난해 대통령 선거 후보 시절부터 당대표 재임 기간 동안 주장했던 내용을 상기해 여의도 복귀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홍 전 대표는 오는 9월15일 귀국해 정계 복귀를 위한 물밑작업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옛 비박(非박근혜)계 수장인 김 전 대표 역시 각종 토론회를 통해 목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당내에 김용태 사무총장과 홍철호 비서실장, 김세연 중앙연수원장 등 당내 주요 직책도 김 전 대표의 측근 그룹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차지하고 있어 본인 의사와 관계 없이 그의 등판을 예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김 전 대표는 최근 문재인 정부를 향해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8월23일 ‘벼랑끝에 몰리는 자영업자·서민과 서민금융제도 개선방안’ 토론회를 열고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한 데 이어 4일 후인 27일엔 ‘길 잃은 보수정치, 공화주의에 주목한다’를 주제로 보수정당의 미래에 관해 목소리를 냈다.


김 전 대표는 바른정당 고문이던 지난해 8월 정진석 한국당 원내대표와 시작한 토론모임 ‘열린토론, 미래’도 다시 시작한다. 당시 초당적 토론모임으로 시작한 ‘열린토론 미래’는 한국당과 바른정당 통합의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꼽혔다.
김 전 대표는 9월4일 ‘열린토론, 미래’의 주제를 ‘소득주도 성장, 왜 문제인가’로 정하면서 문재인 정부 비판수위를 높였다.

 

penf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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