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짚어본 미제사건의 내막 1…화성 연쇄 살인사건

30년 세월 버틴 ‘살인의 추억’…범인은 아직 살아있다?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8/09/12 [13:34]

다시 짚어본 미제사건의 내막 1…화성 연쇄 살인사건

30년 세월 버틴 ‘살인의 추억’…범인은 아직 살아있다?

김범준 기자 | 입력 : 2018/09/12 [13:34]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대사로 유명한 영화 <살인의 추억>은 우리나라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최고의 명작 중 하나로 꼽힌다. 1980년대 실제로 벌어진 사건을 모티브 삼아 한국형 스릴러 장르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영화평론가는 “범인이 검거되지 않는 스릴러의 새로운 문법으로 한국형 장르를 완성했다”고 평했다. 80년대의 부조리한 한국 사회를 풍자한 것도 중요한 지점이다. 이 사건은 바로 ‘화성 연쇄 살인사건’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연쇄살인이라는 점에서 충격이 컷던 이 사건은 5년 여 동안 10여명의 여성피해자가 발생한 잔혹한 사건으로서, 대표적인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화상 연쇄살인 1차사건, 아시안게임 이유로 수사 소홀
피해자 중요 부위에 먹던 복숭아 넣기도…희생자 10명
8차 때 최초 용의자 목격…사건현장 근처 수상한 남성
형사가 범인 추적 나섰지만 공소시효 만료되며 물거품

 

지난 2015년 7월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를 없애는 법안인 ‘태완이 법’이 통과됐다. 그러나 10명이나 강간살인을 당했던 잔혹한 사건인 ‘화성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은 진범을 잡지 못한 채 9년 전 공소시효 만료로 영구 미제사건이 돼 버렸다.

 

연쇄 살인의 서막


화성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일대에서 10대부터 70대까지 10명의 여성이 성폭행당한 후 차례로 살해된 사건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모티브가 되면서 10여년 만에 또다시 여론의 큰 관심을 받았다.

 

▲ ‘살인의 추억’에서 수사를 진행하는 장면 스틸컷.    


이 사건의 주요 특징은 피해자가 모두 여성이라는 점과 피해자가 젊은 층에만 한정되지 않고 50대, 60대, 70대 등 다양하며 피해자의 대부분이 목이 졸려 살해된 점이다.


4, 6, 7, 9차사건 범인은 피해자의 중요 부위를 크게 훼손하기도 했다. 한 피해자의 중요부위에서는 9개의 복숭아 조각이 나오고, 가슴이 19차례나 칼로 도려 질 정도로 범행 수법이 잔인했다.


이 연쇄살인 사건에 경찰 병력만 연 인원 205만 명이 동원 됐다. 용의자와 참고인을 다 합치면 2만1280명, 지문대조를 한 사람은 4만116명이며 507명의 유전자 분석, 모발감정은 180명을 실시했다. 이처럼 수많은 경찰병력을 투입해 얻은 수사기록은 캐비닛 5개 분량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행히도 첫 번째 사건이 서울 아시안게임을 하루 앞둔 날 발생함에 따라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살인사건이 발생 한 후에도 ‘연쇄 살인’으로 수사 되지 않고, 경찰은 일반적인 개별 살인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화성 인근에서 살인은 계속 이어졌다. 그럼에도 수사에 진척이 없자 ‘연쇄 살인사건’으로 알려지며 전 국민적인 관심사가 됐고 이후엔 경찰도 수사에 총력을 기울였다.

 

첫 번째 희생자, 할머니


1986년 9월19일 수원에서 나물을 팔고 딸의 집에 머무르다 귀가하던 할머니가 목초지에서 시신으로 발견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할머니 이모(당시 71세)씨는 목이 졸려 살해당한 채로 발견됐는데 하의가 벗겨져 있었지만 강간의 흔적은 없었다. 경찰은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하고 수사는 흐지부지 중단됐다.


이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 남짓 지난 1986년 10월23일 오후 2시 50분, 박모(당시 25세)씨가 인근 농수로에서 스타킹에 목이 졸린 채 시신으로 발견된다. 시신은 발견 당시 알몸 상태였고, 강간흔적이 있었으며 하체에는 심한 상처가 남아있었다. 시신의 모습이 끔찍한 탓에 세간에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후 두 달 정도가 지난 1986년 12월21일 낮 12시 30분 이모(당시 23세)씨가 관항천 부근에서 스타킹으로 목이 졸린 채 사체로 발견된다. 피해자는 약혼한 남성을 만나고 귀가하던 중 실종됐었다.


이번에도 강간당한 흔적이 있었으며, 범인은 강간 후 피해자의 중요 부위를 날카로운 우산 기둥으로 마구 난자한 뒤 짚더미로 덮어뒀다. 이씨의 약혼자는 사건 이후에 영혼 결혼식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씨는 돌아올 수 없었다.


3번째 희생자가 발견된 지 한 달이 되지 못한 1987년 1월11일 오전 10시 30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홍모(당시 18세)양은 집으로 돌아가던 중 범인에게 잡혀 황구천 둑 한 켠에서 목도리에 목이 졸린 채 숨진 채 발견된다. 양손은 스타킹과 브래지어를 이용해 등 뒤로 묶여있었고 입에는 재갈이 물려져있었다.


역시 강간흔적이 있었으며 12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피해자의 중요 부위에서 B형 혈액이 검출된 것 외에는 다른 단서를 찾지 못했다. 이 사건부터 경찰은 범인을 지능범으로 판단하고 심층적인 수사에 들어간다.


4번째 희생자인 홍양의 시신이 발견된 지 약 3달 지난 시점, 이어 5번째 희생자가 나오고 말았다.


1987년 4월23일 오후 2시 권모(당시 25세)씨의 시신이 안녕리 근처의 공장 옆에서 발견된 것이다. 양손이 묶인 채 하체가 벗겨져 있었고, 사건이 발생한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탓에 시체는 부패하고 있었다. 때문에 현장에 떨어진 도장과 피해자의 옷으로 겨우 신원이 확인됐다.

 

강간 흔적 없는 희생자도


권씨의 시신이 발견 되고 2주가 조금 지난 1987년 5월9일 오후 3시경 박모(당시 29세)씨가 진안리의 야산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초등학생들에 의해 시신으로 발견됐다.


브래지어와 블라우스 등으로 세 차례 목이 졸리고, 목과 어깨 부근에는 돌로 찍힌 듯한 상처가 곳곳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청바지가 그대로 입혀져 있으며 성폭행 흔적이 없었다. 단지 여성을 살인 하는 것이 범행의 목적이라고 볼 수도 있는 대목이었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은 이 사건을 기점으로 매스컴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 된다. 그 때문인지, 7번째 사건은 1년이 넘는 공백을 두고 이뤄졌다.


6차 사건 이후 1년 4개월 가까이 지나며 언론의 관심에서 다소 멀어진 시점에 이 사건은 다시 시작됐다.


1988년 9월8일 오전 9시, 안모(당시 54세)씨가 가재리 농수로 부근에서 블라우스로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안씨의 양손은 뒤로 묶여있었고 입에는 재갈이 물려있었으며 강간 흔적이 있었다. 때문에 경찰은 화성 연쇄 살인사건 범인의 소행임을 알아차린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는 먹다 남은 복숭아가 피해자의 중요 부위 안에서 나와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나마 이 사건에선 중요한 성과가 있기는 했다. 범인으로 유력하게 추정되는 인물이 목격돼 몽타주를 작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건 당일 수원에서 화성으로 가던 버스 막차를 어느 한 남자가 멈춰 세웠다. 남자가 발견된 장소와 시간이 범죄 시각과 장소와 일치한데다 얼굴 윤곽 등도 확실하게 목격된 것이다.

 

단 한 번 목격된 용의자


당시 상황은 이렇다. 해당 버스 운전사와 안내원이 사건 당일 밤 10시경 발안 터미널을 출발해 수원 방면으로 10분쯤 가다보니 24~27세가량의 남자가 정류장도 아닌 곳에서 손을 흔들어 버스를 잡아탔다는 것이다.


이 남자가 버스를 세운 곳은 피해자가 발견된 지점에서 불과 400m 떨어진 지점으로 버스기사 강씨는 “남자는 무릎까지 물에 젖어있었고, 운전석 맞은편 앞자리에 앉아 나에게 라이터를 빌려 담배를 피웠다”고 말했다.


이들의 증언을 통해 경찰은 몽타주를 작성해 현상금 500만원을 걸고 용의자를 공개 수배했다. 그러나 범인은 잡지 못했고, 또다시 같은 지역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 희생자는 이례적으로 자택에서 범행을 당했다.

 

▲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추정한 범인의 몽타주.    


7차 사건이 발생한 지 불과 일주일 밖에 지나지 않은 1988년 9월16일 오전 6시 30분, 중학생 박모(당시 14세)양이 자택 방안에서 자던 중에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 된 것이다.


이번에도 성폭행을 당한 흔적이 있었다. 그런데 피해자의 해당 부위에서 범인의 체모가 극적으로 검출됐다.


검사결과 범인이 B형이라는 것과 티타늄 원소가 확인됐다. 티타늄 원소가 용접공이 사용하는 용접봉에 함유돼 있음을 착안, 경찰은 일대의 용접공 전부를 대상으로 수사를 펼쳤다. 그 결과 농기계 수리공 한명을 범인으로 검거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 사건의 범인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모방범죄자로 밝혀졌다. 결과적으로 화성 연쇄살인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별개의 사건이었던 것이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이로 인해 또다시 미궁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2년이 채 못 된 1990년 11월16일 오전 9시 50분 경 중학생 김모(당시 14세)양이 병점리의 모 석재공장 뒷 편 야산에서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 된다.


전날 학교가 끝난 후 귀가하던 중 성폭행 당하고 살해된 것으로 추정됐다. 중요부위 내에 있던 정액을 검사한 결과 범인은 또다시 B형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이번 9차 사건에는 ‘범인을 아는 제보자’가 존재했다. 피해자 김양의 삼촌인 김모씨 앞으로, 사건 개요가 상세히 적힌 3장의 편지가 도착한 것이다. 편지에는 부산우체국의 소인이 찍혀있었다.


편지의 주 내용은 ‘범인은 피해자 김양의 동네와 가까운 공장사람이며, 나이는 10대 혹은 30대이고, 사정상 이름을 밝히지 못하며, 수사에 참고하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인천에 거주하던 피해자의 삼촌 김씨는 부산에 친인척은커녕 지인도 없으며 해당 편지의 필적 또한 생소하다고 증언했다.


곧 경찰은 편지를 쓴 사람이 김명기씨의 주소를 정확히 알고, 범행 장소를 잘 알고 있으며 범인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점으로 미뤄 편지를 보낸 사람이 범인 혹은 범인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이에 수사에 착수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는 못한다. 이 9차 사건이 바로 2003년 개봉된 영화 ‘살인의 추억’의 소재가 됐다.

 

1991년의 마지막 사건


그리고 다섯 달이 지난 1991년 4월4일 오전 8시 30분.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마지막 희생자 권모(당시 69세)씨가 반송리의 한 야산에서 하늘색 한복치마가 벗겨져 강간당하고 스카프로 목이 감긴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러나 남아있던 정액과 체모 조사결과 9차 사건의 범인과 DNA가 일치하지 않아 이번 사건도 모방범죄로 확인됐다. 결국 1991년 이 10차 사건을 끝으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추가로 발생하지 않았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한 시기에는 과학수사가 발달하지 못해 경찰이 남겨진 증거를 훼손하거나 지나쳐 버리는 일이 많았다. 당시 수사 기술로는 시신의 중요 부위에서 발견한 정액으로 혈액형만 간신히 파악했을 뿐이어서 유전자 감식도 불가능했다.


한편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 장기화되면서 화성 지역의 남성들이 고충을 겪기도 했다. 당시로선 범인을 잡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말도 있지만 조사 명목으로 고문을 받는 일도 있었던 것.
또, 3명의 용의자가 자살하거나 도주하다가 경찰과 물리적 접촉 끝에 숨지는 일 등이 발생해 ‘화성괴담’이라는 말까지 돌기도 했다.


이 중 한 형사는 도망가는 용의자를 잡으려다 용의자가 뇌출혈로 사망하는 바람에 수원 살인사건 용의자 두 명을 풀어주게 된 일도 있었다. 수원 살인 사건은 화성 살인 사건과의 연관성이 제기된 사건이었다. 당시 경찰의 고문 문제로 여론이 좋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쫒는 용의자 있었지만…


그 일로 감옥에 들어간 한 형사가 교도소 내부에서 수원 살인사건 용의자 두 명 중 한명인 A군의 감방동기로부터 화성 사건과 연관된 정황 등을 듣게 된다. A가 기소유예로 풀려나고 1988년 2월에 입대했는데 그의 일병휴가 기간 동안에 집중적으로 8차, 9차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공시 시효 전까지 해당 형사가 A를 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렇듯 화성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은 범인에 대한 온갖 추측과 가설이 쏟아졌지만 결국 지난 2006년 9월19일 공소시효가 끝나면서 영구미제 사건이 돼 버리고 만 것이다.

penf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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