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무죄·김문환 유죄’ 상반된 판결 내막

친분과 호감의 차이?…‘성폭행 정황’이 그들의 운명 갈랐다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8/09/18 [14:38]

‘안희정 무죄·김문환 유죄’ 상반된 판결 내막

친분과 호감의 차이?…‘성폭행 정황’이 그들의 운명 갈랐다

김범준 기자 | 입력 : 2018/09/18 [14:38]

위력을 행사해 하급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김문환 전 주 에티오피아 대사가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으면서, 유사한 죄목으로 기소되어 무죄를 선고받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대조되고 있다. 안희정 지사는 ‘무죄’가 선고됐고 김문환 대사는 ‘유죄’가 선고됐기 때문이다. 같은 혐의였지만 상반된 판결을 받아든 것이다.

 


 

사건전후 사정과 피해자의 정황 등이 운명 갈라놓아
피해자 태도·진술 신빙성 고려…신고와 수사의 차이
서지현 폭로로 시작된 ‘검찰 미투 사건’도 유죄 판결

 

김문환-안희정 두 사건 모두 가해자와 피해자의 상하관계가 뚜렷하고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이라는 혐의가 적용됐다.

 

▲ 김문환 전 에티오피아 대사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진출처=외교부, 충남도청>    

 

상반된 판결의 이유


하지만 사건 전후 사정과 피해자의 정황 등이 두 사건의 유·무죄를 가른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박주영 판사는 12일 김 전 대사가 현지 코이카(KOICA) 직원을 업무상 위력으로 간음한 혐의를 인정하고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또 불구속 상태로 기소된 김 전 대사를 법정구속하고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아동 청소년 관련 기관에 대한 3년간 취업제한 등도 명했다.


김 전 대사는 2014년 11월 에티오피아 대사관 관저에서 A양에게 업무상 위력을 이용해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다. 또 2015년 3월 B씨에게 업무상 위력을 이용해 간음하고, 지난해 5월에는 C씨를 성추행한 혐의도 있다.


재판과정에서 김 전 대사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업무상 지위나 위세를 이용하지 않은 ‘합의된 성관계’라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재판부는 김 전 대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안 전 지사가 비서 김지은씨를 간음한 혐의를 두고 “‘위력’이라 볼 만한 지위와 권세는 있었으나 이를 통해 자유의사를 억압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던 것과는 상반된 결론인 것이다.


다른 판결이 나온 요인 중 하나는 사건 전후의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에 대한 법원의 관점으로 분석된다.


안 전 지사 사건에서 재판부는 사건이 발생한 전후에 김지은씨가 보인 행동이나 주변 사람들과 주고받은 문자 내용 등을 근거로 무죄판단을 내렸다. 김씨가 제3자에게 안 전 지사에 대한 우호적 표현을 하는 등 가해자와 피해자가 업무적 관계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 재판부는 “피해자는 심리적으로 얼어붙는 상황일 정도로 매우 당황해서 바닥을 보며 중얼거리는 식으로 거절 의사를 표현했다고 한다. 그러나 (간음 후 아침에) 러시아에서 피고인이 좋아하는 순두부를 하는 식당을 찾으려 애쓴 점, 귀국 후 피고인이 다니던 미용실을 찾아가 머리 손질을 받은 점 등이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반면 김문환 전 대사의 경우 재판부는 “두 사람은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업무상 관계 외에 친분이 없고, 당일에도 이성적인 호감이 발생했다고 볼 만한 사정은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피고인이 업무시간 외에 술자리를 자주 마련했는데, 이를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피해자가 당일 ‘숙제하듯 의무적으로’ 피고인과 테니스를 치고 저녁 식사 요청에 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하며 “평소 피고인의 지위와 피해자와의 관계 등에 비춰보면 성추행을 지적하며 단호하게 항의하기 어려웠다는 피해자의 진술은 수긍이 간다”고 밝혔다.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은 피해자를 두고 ‘받아줬다’고 주장한 김 전 대사 측에 재판부는 “갑자기 이성적 호감이 생겼을 만한 사정이 없는데 과연 피해자의 어떤 행동으로 ‘받아줬다’고 생각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두 사건은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도 달랐다. 안희정 전 지사 사건의 재판부는 비서였던 김 씨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만한 안 전 지사와의 텔레그램 대화 내용을 일부 삭제하고 증거로 제출했다는 점과 김씨의 진술이 다른 증인들의 진술과 다소 차이가 있다는 점 등을 들어 김지은씨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달리 김문환 전 대사 사건 재판부는 “애초에 피해자가 먼저 진정을 제기한 것이 아니라 외교부가 다른 성폭력 행위를 조사하던 중에 이 사건이 밝혀졌고, 오히려 피해자는 진술을 꺼린 사정도 있다”며 “피해자는 불안과 공포로 얼어붙은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런 사정을 보면 피해자가 달리 허위로 진술할 만한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지난해 7월 에티오피아 대사관 내에서 벌어진 외교관의 여직원 성폭행 사건을 조사하던 중 김 전 대사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 특별감사단을 구성해 현지조사에 나섰다.


이후 외교부는 조사결과 김 전 대사의 성 비위를 확인하고 같은 해 8월 김 전 대사를 검찰에 고발했다. 또 징계위원회를 소집해 다음 달 파면했다.

 

검찰 미투사건 유죄


이처럼 미투에 이은 성폭행 사건이 하나둘 씩 재판정에서 판결이 나는 가운데, 이를 촉발시켰던 ‘검찰 미투’사건도 2심이 끝났다.

 

▲ 서지현 검사로 촉발된 검찰 내 미투 사건도 적발된 부장검사가 2심 판결을 받았다. <사진출처=JTBC 뉴스 캡처>    


후배 검사 등 여성 2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직 부장검사에게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유죄가 인정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부는 지난 9월13일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김모 전 부장검사에게 1심과 같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공소장에 불필요한 부분이 있다는 김 전 부장검사의 ‘공소장 일본주의(一本主義)’ 주장에 대해 “다소 부적절하지만 실체를 판단하지 못하게 할 정도는 아니다”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정상을 모두 참작했다”며 “원심 판결 이후 피해자 중 한명과 합의했다는 서류를 제출했지만 형을 변경하진 않겠다”고 밝혔다.


김 전 부장검사는 지난해 6월 노래방에서 법무연수원 교수로 재직할 당시 알게 된 A씨를 강제 추행하고, 같은 해 8월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부장검사로 근무하면서 알게 된 B씨를 추행한 혐의(강제추행)로 구속기소 됐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발족된 ‘성추행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조사단’은 성범죄 피해 사례를 접수하던 중 김 전 부장검사의 범죄 혐의를 발견하고 수사를 진행했다. 조사단은 김 전 부장검사를 조사하던 중 긴급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해 발부됐다.


1심은 김 전 부장검사에게 “직업적 관계를 통해 신뢰했던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점에서 죄질이 좋지 않다”면서도 “수감 생활을 통해 잘못을 뉘우치는 것으로 보인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지난 8월 법무부는 김 전 부장검사를 면직 처분했다.

penf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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