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원권' 발행 12년…90조 어디서 도나?

논란의 중심에 섰던 최고액권 이젠 대세..."가장 흔한 지폐" 맹활약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8/10/08 [09:47]

'오만원권' 발행 12년…90조 어디서 도나?

논란의 중심에 섰던 최고액권 이젠 대세..."가장 흔한 지폐" 맹활약

김범준 기자 | 입력 : 2018/10/08 [09:47]

지난 2009년 첫 발행되어 사용되기 시작한 ‘오만원권’이 시중에 90조 원이나 돌고 있다. 발행이후 우리나라 최고액권으로 특수한 지위를 누려온 오만원권은 발매 당시부터 다양한 논란이 있어왔다. 주요한 현금 비자금 화폐로 이용될 것이라는 비판부터, 신사임당 도안까지 각종 부정적 기류가 있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각종 비판에도 오만원권은 이미 각종 경조사의 축의금, 조의금, 세뱃돈 등으로 맹활약하며 우리사회에서 완벽히 자리 잡았다.


 

80조 유통 ‘가장 흔한 지폐’ 오만원권…만원권 첫 추월
연평균 10조씩 가파른 급증…가계 비상금 대부분 차지해
모델 신사임당 도안 논란…박근혜 닮았다 음모론도 퍼져
불법자금 등 지하경제 조장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 오만원권.    <김범준 기자>

 

우리나라 지폐 중 고액권인 오만원권이 시중에 90조 원 넘게 풀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오만원권 지폐의 발행 잔액은 90조122억 원으로 한 달 전보다 5502억 원 증가했다. 발행잔액은 발권기관인 한국은행이 시중에 공급한 뒤 회수되지 않고 남아 있는 돈이다.

 

대세 된 오만원권


지난 2009년 6월부터 유통된 오만원권의 발행 잔액이 90조 원을 넘은 것은 올해 2월(90조2150억 원) 이후 두 번째다.
이후 오만원권 발행 잔액은 3∼6월 다시 80조 원대로 내려앉았으나 꾸준한 수요가 뒷받침되며 5개월 만에 90조 원 선을 다시 넘었다.


오만원권의 인기는 다른 지폐와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실제 만원권, 오천원권, 천원권의 발행 잔액은 오만원권과 달리 감소세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만원권의 발행 잔액은 14조9946억 원으로 한 달 전보다 1421억 원 줄었고 오천원권의 발행 잔액은 1조3857억 원으로 43억 원 감소했다. 천원권 발행 잔액은 11억 원 줄어든 1조5755억 원으로 집계됐다.


오만원권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시중에 유통되는 지폐의 잔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오만원권의 비중은 83.4%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발행 초기이던 2010년 상반기만 해도 이 비중은 30%대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지급 결제 시 신뢰도가 높아 오랫동안 현금처럼 쓰인 십만원권 자기앞수표가 2009년 등장한 오만원 은행권의 위세에 눌려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8년 상반기 중 지급결제동향’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자기앞수표의 하루 평균 결제규모는 1조817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7% 감소했다. 이 가운데 비정액권(1조6490억 원)이 7.9% 하락한 데 비해 정액권(1670억 원)은 배 이상인 16.1% 줄었다. 이는 십만원권이 지난해 상반기 470억 원에서 올 상반기 350억 원으로 24.8% 감소한 영향이 컸다. 5년 전인 2014년(940억 원)과 비교해 3분의 1가량으로 쪼그라든 모양새다. 매년 20% 넘게 결제액이 줄고 있어 이 추세대로라면 사실상 결제수단에서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로 보인다. 여기에다 모바일뱅킹 등 소액결제 수단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십만원권 자기앞수표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십만원권 자기앞수표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이면에는 익명성과 지급 편리성을 갖춘 오만원 지폐가 있다. 가계나 기업의 80∼90%가 오만원 지폐를 비상금(또는 비자금)이나 거래용으로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십만원권 자기앞수표가 처한 위기의 근본원인으로 지적된다. 발행 첫해인 2009년 10조 원가량이던 오만원 지폐 발행잔액은 올해 6월 말 현재 89조5000억 원에 이르렀다.


6월 말 기준 전체 화폐 발행잔액 110조693억 원 가운데 오만원 지폐 비중은 81.28%에 달해 사상 처음으로 81%대로 올라섰다. 한국은행은 그간 오만원 지폐가 ‘지하경제’를 조장한다는 지적을 의식해 만원권 제조화폐 배정 시 오만원권 입금실적을 반영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6월 말 현재 오만원권 지폐 환수율은 48.25%로 석 달 연속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8월 기준 만원권의 누적환수율은 98.84%를 기록 중이다. 2015년 이후 98% 선에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오만원권 누적환수율이 더 늘어날 여지가 있는 대목이다.


한은 관계자는 “휴대 편리성에 오만원권이 많이 쓰인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미국과 일본 등 해외 주요국의 고액권 비중도 90% 안팎”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공급증가와 함께 화폐배정 정책을 개편한 것도 오만원권 환수율을 높인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 오만원권이 90조 원 이상 시중에 돌면서 만원권보다 흔한 화폐로 등극했다. <사진출처=KBS 뉴스 캡처>

 

논란의 화폐


이처럼 대세가 된 오만원 권의 도안 인물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여류 문인 및 서화가이고, 이미 오천원권 지폐에 차용된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기도 한 신사임당이다. 조선 시대 대표적인 현모양처로 불리며, 그 인지도가 인정되어 오만원권 도안에 차용되게 되었다.


이 지폐의 신사임당을 그린 사람은 일랑 이종상 화백이다. 서울대학교 미대 명예교수이다. 참고로 오천원권 지폐의 율곡 이이도 이 화백이 그렸다.


앞면 왼쪽의 보조 소재는 신사임당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묵포도도와 초충도수병의 가지그림, 뒷면은 조선시대 주익의 뛰어난 회화작품 중에서 어몽룡의 월매도와 이정의 풍죽도가 보조 소재로 사용되었다. 뒷면 도안인 월매도와 풍죽도가 특이하게 세로 방향으로 인쇄되어 있다. 대한민국 지폐 사상 최초의 세로형 디자인이라는 점에서 파격적이라는 입장이다.


최고액권인 지폐답게 위조 방지 장치가 매우 복잡하다. 위조지폐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위조 방지 장치라는 것이 위조 자체를 완전히 못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정교하게 위조하려면 액면가보다 많은 돈이 들어갈 만큼 복잡하게 만들어서 위조를 못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만원권 지폐에는 국내 지폐에 처음 도입되는 ‘입체형 은선’이 들어있다 특히 지폐에 있는 은색 점선에는 오만원권에만 있는 태극마크가 있는데 이게 굉장히 기묘하다. 지폐를 좌우로 돌리면 태극마크가 위아래로 움직이며 지폐를 위아래로 돌리면 태극마크가 좌우로 움직인다.


다만 오만원 권은 태초 발매 때부터 논란이 많았던 화폐였다. 일단 오만원권은 한국에서 실존인물인 모자가 화폐 인물이 된 최초 사례다. 세계적으로도 왕정제가 폐지된 국가에서 혈연관계의 인물이 화폐에 같이 오르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사례다.


초상화 인물 선정 과정에서 잡음이 많았는데 통과됐다. 참고로 당시 경쟁한 위인들은 백범 김구, 광개토대왕, 안창호, 장영실, 유관순 등이 있다.


이들에 비해 신사임당의 경우 화폐의 인물로 등록되기에는 생전 활약이 전무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부족한 인물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사회적 특성상 여자가 활약할수 있는 분야는 매우 제한되어 있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어차피 화폐 도안에 여성을 사용하기로 한 이상, 인지도 면에서 사임당 신씨가 가장 유명하다. 게다가 1900년대 이전 인물 기준으로는 그다지 인지도가 높은 한국사 여성 위인이 많지 않다. 기껏해야 허난설헌이나 황진이, 김만덕, 선덕여왕, 논개 정도일까. 물론 인지도가 없어도 여성 독립운동가들처럼 훌륭한 업적을 남긴 여성들은 많다.


남녀평등의 추세에 따라 여성 인물을 화폐에 삽입하기야 했으나, 정작 여성계에서도 신사임당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았고 오히려 반대하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신사임당의 이미지는 ‘아들 이이를 훌륭하게 키워놓은 현모양처’이지 ‘자유롭고 적극적인 여성’과 정반대되는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히려 여성 위인이라는 점이 ‘대한민국의 여성을 대표’하는 것으로 비추어질 수 있고, 그렇다면 구시대적 관점에서 현대 여성들에게 ‘현모양처’로서의 구시대적 여성상을 강요하는 것으로 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사임당이 전형적인 현모양처와 거리가 있는 인물이라는 역사적 평가도 있다. 이 때문에 역사적인 관점에서 ‘역사도 모르면서 공세 펼치지 말라’는 식으로 여성계를 비웃는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여성계가 신사임당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세세하게 신사임당을 평가한 것이 아니라 신사임당의 이미지와 상징을 따진 것이다. ‘현모양처로서의 신사임당’이 없었다면 신사임당이 ‘위인’으로 추앙받고, 그것도 화폐도안이 될 정도의 인물이 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수백 년간 신사임당은 ‘아들 율곡 이이를 훌륭하게 키우고 남편을 보좌한 여성이자 모든 여성들이 본받아야 할 인물’로서 부각되어왔고 신사임당을 ‘화폐에 쓰일 정도의 위인’으로 만들어준 것 역시 결국 그런 현모양처로서의 이미지였다. 결국 역사적인 진실과는 별개로 ‘위인으로서의 신사임당’은 ‘전형적인 현모양처’에 불과하다.


이처럼 비판의 목소리가 커서 선정 과정에 누군가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음모론도 나왔다. 예를 들어 한국은행의 당시 부총재(이주열, 현 한국은행 총재)가 이순신과 율곡 이이의 성씨인 덕수 이씨 종손이라서 뽑혔다는 주장마저 흘러나왔다.


게다가 신사임당 초상화에도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현재 오만원권에 있는 신사임당 초상화는 이전까지 알려져 있던 신사임당 표준영정과는 약간 다르게 생겼는데, 이는 신사임당 표준영정의 작가인 이당 김은호가 친일 논란의 대상이 되어 초상화를 수정해야 했고, 화폐 도안이라서 정면을 바라보던 영정을 15도 정도 오른쪽을 바라보게 수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체된 이 초상화 역시 비판받은 바 있.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닮았다는 말도 있고, 박근혜 대통령의 모친인 육영수 여사와 닮았다는 소리도 있었다. 또한 유력하고 지지가 높았던 백범 김구가 보수 정치권의 마음에 안 들었다는 기사나 심지어 18대 대선을 앞두고 정권이 일부러 박근혜를 닮은 초상화를 넣었다는 음모론 마저도 돌았다. 48세에 사망한 신사임당이 30대의 초상화로 그려졌다는 점에서 “신사임당이 포토샵도 하셨냐”는 비아냥도 존재한다.


뒷면의 도안에 대해서도 약간의 논란이 존재하는데, 뒷면 도안인 월매도와 풍죽도가 대한민국 지폐 사상 최초로 세로 방향으로 인쇄되어 있다. 그러나 기존의 지폐 도안이 모두 가로로 되어 있고, 이로 인해 이 작품까지 가로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원작 훼손이라는 비판이 존재한다. 애초에 작품 자체가 지폐 형태에 맞추기 위해서 매화 가지를 1/3정도 잘라버리고, 보름달을 하늘 끝에서 1/2 이나 끌어내린 편집본이다.

 

▲ 오만원권 화폐 인물인 신사임당에 대해서는 발매전 꾸준이 논란이 이어져왔다.<사진출처=신사임당 사당>

 

악용되는 돈


이 같은 히스토리가 있는 오만원권은 발매 후 꾸준히 불법자금 등 지하경제를 조장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왔다. 수사당국의 압수수색에서 오만원권이 무더기로 발견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국화폐 최고액권이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오만원권이 자기앞수표의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하면서 유통이 꾸준히 늘었고, 2012년 기준 발행액은 이미 만원권을 앞질렀다. 이로 인해 경마, 강원랜드, 유흥업소 등 대량의 현금이 왔다갔다 하는 곳에는 엄청나게 암약하고 있다.


실제로 대한민국 화폐 중에서 뒷세계로 가장 많이 흘러들어간 지폐이다. 이유는 최고액으로서 돈세탁에 아주 편리하게 사용되기 때문인 데다가, 고액권에대한 환전수수료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에는 서류가방에 만원권을 가득 채워봤자 7000만 원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나 현행 오만원권은 만원권 구권보다 크기는 더 작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액면가가 5배로 확 뛰었기 때문에 서류가방에 가득 채우면 거의 10억 원 가까이 들어간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건국 이래 최대 스캔들이라 불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의 사례다. ‘국정 농단 의혹’의 핵심 인물인 최순실의 가사도우미는 법정에서 최순실의 평소 소비 행태에 대해 “오만원권 지폐를 물 쓰듯 썼고 집에서도 비밀이 많았다. 안방과 딸의 방에는 각각 개인금고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고가의 물건을 구입할 때도 카드가 아닌 현금을 고집하는 등 비밀이 많았고, 특히 오만원권을 뭉치로 들고 다녔다는 내용이다. 현금에 대한 최순실의 애착은 스포츠컨설팅회사인 더블루K의 최초 자본금과 사무실 임대보증금 등 1억여 원을 현금으로 처리했다는 내용에서도 드러난다. 전액 오만원권이었다.


또한 검찰이 지난해 12월 엘시티 금품비리 혐의를 받은 한 국회의원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던 중 주방 찬장에서 4000만 원 어치의 오만원권 돈뭉치를 발견한 경우도 있다.


그리고 지난 2011년 전북 김제의 한 마늘밭에서 110억여 원이 넘는 현금 뭉치가 발견됐다. ‘마늘 밭 돈다발’ 사건이다. 당시 발견된 현금은 전부 오만원권으로, 총 22만 장에 달하는 양이었다. 경찰 수사 결과 이 돈은 불법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개장해 번 돈으로 드러났다.


또한 경마, 강원랜드, 유흥업소 등 대량의 현금이 왔다갔다 하는 곳에는 엄청나게 활약하고 있다. 실생활보다는 고액권의 역할에 중점적으로 유통되는 셈이다. 이처럼 오만원권은 보관하기 쉬운 지폐인 만큼 악용될 위험도 큰 것이다.
또한 최고액권이라는 지위로 인해, 위조지폐 범죄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중이다. 실제로 지난해 오만원권 위조지폐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제출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 8월까지 적발된 위조지폐는 오만원권이 3708장(1억8540만 )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위조지폐 만원권이 3345장(3345만 ), 오천원권이 3437장(1718만5000원), 천원권이 114장(11만4000원)으로 나타났다.


만원권 위조지폐는 2014년 930장, 2015년 335장, 2016년 671장으로 주춤했다가 2017년에 1216장으로 급증했다. 심 의원은 “지폐를 위조하는 것은 자영업자에게 피해를 주는 중대 범죄”라며 “관계 당국은 철저한 예방과 단속 활동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penfree@hanmail.net


원본 기사 보기:주간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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