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결문에 비친 어지러운 치정사건 다섯

“살려달라”는 7층서 밀친 비정男…대체 왜?

김혜연 기자 | 기사입력 2018/11/14 [10:53]

법원 판결문에 비친 어지러운 치정사건 다섯

“살려달라”는 7층서 밀친 비정男…대체 왜?

김혜연 기자 | 입력 : 2018/11/14 [10:53]

얼마 전까지 남자친구였거나 남편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흉악한 폭도로 돌변해 여자친구나 아내의 목숨을 빼앗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10월 발생한 ‘부산 일가족 피살 사건’은 숨진 30대 손녀와 피의자가 과거 연인 관계였던 사실이 드러나 온 나라에 충격을 안겼다. 사귀던 여성의 이별 통보에 앙심을 품고 옛 여친의 가족 4명을 처참하게 살해한 이 사건을 계기로 ‘이별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안전 이별’이라는 말도 회자되고 있다. 데이트 폭력 발생 건수도 급격히 늘고 있다. 지난해 입건된 데이트 폭력 피의자들을 혐의별로 살펴보면 폭행·상해가 73.3%(7,552명)로 비중이 가장 높았으며 감금·협박 등이 11.5%(1189명), 스토킹, 주거 침입, 명예훼손 등을 포함한 경범 등 기타 혐의가 1.3%(138명), 성폭력 0.5%(50명) 등의 순이었다. 이 가운데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17명(0.17%)이었고 살인 미수 혐의로 입건된 사람은 50명(0.5%)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데이트 폭력과 이별 범죄가 갈수록 심각해지자 사법당국은 피해자를 촬영한 동영상으로 협박을 하는 등 악질 데이트 폭력범에 대해선 가중해서 처벌할 수 있는 ‘삼진 아웃제’를 적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연인이나 부부 간의 사랑에 금이 가거나 첨예한 갈등으로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부지기수다. 법원 판결문에도 남녀 간의 사랑으로 생긴 온갖 어지러운 정에 의해 벌어진 치정극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지난주 판결문에 비친 남녀 간의 사랑과 전쟁 5건의 이면을 들춰본다.

 


 

50대 남성 ‘발코니 몸싸움’ 벌이던 여친 추락사시켜 실형
오피스텔 욕조서 40대 여성 숨진 채…용의자 동거남 투신
옛 여친 나체사진 파일, 여친의 지인에 전송한 30대 실형


배우자 있는 것 알면서 11년 부정행위 내연남 ‘위자료 지급’
‘부부 죽음’ 부른 성폭행 사건…대법원은 ‘무죄’ 파기 환송

 

▲ 법원 판결문에는 남녀 간의 사랑으로 생긴 온갖 어지러운 정에 의해 벌어진 치정극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1. 여친 추락사시킨 비정한 남친


아파트 7층 발코니에서 몸싸움을 벌이다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여자친구를 20미터 아래로 떨어뜨려 숨지게 한 비정한 남자친구가 재판에 넘겨져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연합뉴스> 10월31일 보도에 따르면 인천지법 형사14부가 폭행치사 혐의로 기소된 50대 남성 A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는 것.
A씨는 2016년 5월16일 밤 11시35분께 인천시 연수구 한 아파트 7층 발코니에서 여자친구 B씨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20미터 아래로 떨어뜨려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사건 발생 전 성격 차이로 B씨와 말다툼을 벌이다가 손목을 잡아당기는 등 몸싸움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발코니로 도망간 B씨가 난간 위에 걸터앉아 “살려주세요”라고 소리치자 이를 제지하기 위해 B씨 다리를 붙잡은 상태에서 밀고 당기다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재판에서 “여자친구가 갑자기 집에 가겠다고 하며 거실로 나갔다”며 “살려달라는 소리를 듣고 (방에서) 나와보니 발코니 난간에 매달려 있어 끌어올리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목격자의 진술 등을 토대로 당시 B씨가 팔로 난간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난간에 걸터앉아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40대 후반의 평범한 여성인 피해자의 근력 등을 미뤄보면 피해자가 발코니 바깥쪽으로 넘어가 매달리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며 “'살려주세요'라고 말하며 구조도 요청하던 상황이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인은 그런 상황에서 실랑이를 벌일 경우 피해자가 발코니 밖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며 “피고인이 피해자의 다리를 잡고 밀고 당긴 행위와 피해자가 사망한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유족들로부터 용서도 받지 못했다”면서도 “당시 폭행 정도가 심하지 않은 점 등은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2. 욕조서 40대 여성 숨진 채 발견


경기도 고양시의 한 오피스텔 욕조에서 4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10월31일 일산 동부경찰서에 따르면 C(42)씨의 동생으로부터 “누나가 열흘 넘게 연락이 안 된다”는 실종 신고 접수를 받고 수사에 나섰다는 것.
신고자의 누나가 사는 고양시 일산동구의 한 오피스텔을 수색한 경찰은 이날 오후 2시 30분께 욕조에서 이불과 비닐 등으로 덮인 C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C씨의 시신은 상당히 부패한 상태로, 검시 결과 흉기나 둔기에 의한 외상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오피스텔 내부에서는 피가 묻은 헝겊이 발견되기도 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숨진 C씨와 10년 넘게 동거해온 남성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를 발견하고, 유력한 용의자로 D씨(48)를 쫓았지만 한발 늦은 상황이었다. 오피스텔과 주변을 수색해 6층 건물 돌출 부분에 쓰러져 숨져 있는 D씨를 발견한 것이다.
경찰은 숨진 여성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가족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오피스텔을 수색하기 직전 동거남 D씨가 투신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 연인이나 부부 간의 사랑에 금이 가거나 첨예한 갈등으로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지금 이 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D씨의 시신이 발견된 곳은 주민들 눈에는 잘 띄지 않고, 옥상에서 내려다봐야 보이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주변 수색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접근했기 때문에 D씨를 발견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입주민들의 진술과 폐쇄회로(CC)TV를 분석한 결과 D씨는 경찰 수색 직전 오피스텔 10층으로 올라가 투신한 것으로 파악됐다.
C씨와 D씨는 10년 이상 동거한 사이로 조사됐다. 경찰은 C씨의 시신에 대한 부검을 의뢰하는 등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3. 헤어진 여친 알몸 사진 지인에 전송


집행유예 기간에 헤어진 여자친구의 나체사진 등이 담긴 영상파일을 휴대전화로 여자친구의 지인에게 전송한 30대가 1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검찰의 범죄사실에 따르면 피고인인 30대 초반의 E씨는 2017년 4월11일 창원지방법원에서 도로교통법 위반죄(음주운전) 등으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같은 달 19일 확정돼 현재 집행유예 기간 중이다.


E씨는 여자친구이던 피해자(20대 중반)가 헤어지자면서 전화를 받지 않자 이전에 피해자로부 터 휴대전화로 전송받은 피해자의 나체사진 파일과 알몸으로 샤워를 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파 일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그녀의 지인들에게 유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뒤 E씨는 지난해 10월20일 0시20분경, 10월31일 0시2분경 자신의 주거지에서 휴대전화 를 이용해 두 차례 피해자의 지인 2명에게 영상파일을 전송해 이를 반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울산지법 형사6단독 재판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E씨에게 징역 10개월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선고했다고 11월2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동종 전과 없고 범행 후 깊이 뉘우치고 있는 점은 인정되나, 집행유예 기간 중임에도 자중하지 않고 이 사건 범행에 나아간 점, 이 사건으로 인한 피해자의 피해 정도가 중하고, 피해자와 원만하게 합의하지 못한 점 등 양형 조건을 종합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 명했다.


재판부는 또한 “유죄 판결이 확정되면 피고인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특례법 제42조 제1항에 따라 신상정보 등록대상자가 되므로, 같은 법 제43조에 따라 관계기관에 신상정보를 제출할 의무가 있다”면서 신상정보공개 및 고지명령과 취업제한명령은 면제했다.

 

4. 바람난 아내 이혼소송 기각


내연남에게 부부 공동의 재산인 빌라 매매대금을 빌려주는 등 부정행위를 하고 집을 나간 뒤 이혼 소송을 제기한 아내의 청구를 재판부가 기각하고 반소한 남편의 이혼 청구를 인용한 판결이 나왔다.


부산가정법원 제1가사부는 아내 F씨가 남편 G씨를 상대로 제기한 이혼 소송을 기각하고, G씨에게 위자료 2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고 10월30일 밝혔다. 또 자녀 2명의 양육자로 남편 G씨를 지정하고 아내는 양육비로 월 각 60만 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원고인 F씨와 피고인 G씨는 2003년 6월7일 정식 혼인신고를 마친 법률상 부부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미성년자인 자녀가 2명 있다.


아내는 2016년 4월경 골프동호회에서 H씨를 알게 됐다. 남편은 아내의 부정행위를 의심하던 중 2017년 4월28일 골프를 치러 가는 아내의 차에 녹음기를 설치했고, 아내가 H씨를 오빠라고 부르며 대화하는 내용의 녹음파일을 들었다. 남편은 홧김에 부부싸움을 하다가 아내의 뺨을 때렸고 아내의 음모를 깎도록 했다.


얼마 후 아내는 내연남 H씨에게 2016년 12월에 3000만 원을, 2017년 5월에 빌라의 매매대금 중 7000만 원을 빌려줬다. 아내와 H씨는 남편으로부터 밀라 매매대금 등을 돌려달라는 요구를 받자 이를 김모 회장에게 투자했다고 거짓말하며 김모 회장 명의의 확인서를 위조해 남편에게 제시했다.


아내와 내연남 H씨는 이로 인해 지난 7월16일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받기도 했다.
부부싸움 뒤에도 아내는 H씨와의 관계를 이어갔고, 이로 인한 다툼으로 아내는 집을 나와 남편과 별거 중이었다.
이후 아내는 “남편이 의처증이 있고 상습적으로 폭행했다”며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혼인관계 파탄의 주된 책임은 아내 F씨의 부정행위로 인한 부부간의 애정과 신뢰 상실”이라고 꼬집으며 “현재까지 제출된 자료에 비추어 보면 아내 F씨가 주장하는 폭행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어 “두 사람 모두 이혼을 원하고 있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상실해 앞으로 혼인생활을 지속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며 남편 G씨의 반소를 인용했다.

 

5. 부부 죽음 내몬 성폭행 사건 판결 뒤집힌 까닭


30대 부부가 성폭행 피해를 주장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에서 가해자로 지목됐다가 1·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30대 남성에 대해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대법원 1부는 강간 혐의 등으로 기소된 I씨(38)의 상고심에서 강간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유죄취지로 대전고법에 돌려보냈다고 10월31일 밝혔다.


조폭 조직원으로 활동했던 I씨는 지난해 4월 친구가 해외 출장을 떠난 사이 친구 아내를 충남 계룡시의 한 모텔로 불러내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남편과 자녀들을 해치겠다”고 협박한 뒤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성폭행 나흘 전 피해자를 폭행한 혐의도 받았다. 조폭 후배들을 폭행한 혐의도 있었다.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인정될 여러 사정이 있는데도 증명력을 배척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판단에는 사실을 오인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폭력조직원인 I씨는 지난해 4월 충남 계룡시 한 모텔에서 말을 듣지 않으면 남편과 자녀들에게 위해를 가할 것처럼 협박해 J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I씨는 폭력조직 후배들이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폭행한 혐의도 받고 있다.


1심은 지난해 11월 폭행혐의 등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 6월을 선고하고 A씨를 성폭행한 혐의는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심도 올해 5월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정을 찾아볼 수 없어 ‘범죄의 증명이 없다’는 원심을 인정할 만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 부부는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지 넉 달 뒤인 지난 3월 전북 무주의 한 캠핑장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들은 ‘죽어서도 끝까지 복수하겠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하지만 2심도 1심과 같이 강간 혐의는 무죄로 판단하고 I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던 것.


하지만 대법원은 판단은 달랐다. J씨의 피해 증언에 신빙성이 인정된다며 2심 재판을 다시 하라며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모텔 CCTV 영상에 대해 “피해자가 박씨와 각자 떨어져 앞뒤로 걸어간 것뿐인데 이를 들어 겁을 먹은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강간 뒤 대화를 나눈 것에 대해서도 “피해자로서는 무서운 마음에 박씨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을 의도로 대화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하면서 “항소심은 성폭행 사건을 심리할 때 요구되는 ‘성인지(性認知) 감수성’을 결여했다”고 지적했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피해자 입장에서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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