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데이트 폭력, 신고하지 못하는 이유

당해도 혼자서 ‘끙끙’…“학생이 연애는 무슨…”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8/12/05 [11:45]

10대 데이트 폭력, 신고하지 못하는 이유

당해도 혼자서 ‘끙끙’…“학생이 연애는 무슨…”

김범준 기자 | 입력 : 2018/12/05 [11:45]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 17세 여학생은 지난해 전 남자친구의 데이트 폭력 때문에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남자친구가 욕설을 할 때까지는 크게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팔로 어깨를 밀치거나 하체를 발로 차는 등 더욱 폭력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지금은 헤어졌지만, 당시에는 이별을 통보하면 더 큰 화를 불러올까 고민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부모나 교사, 경찰에 도움을 요청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진 않았다. 20~30대 청년의 데이트 폭력은 경찰에 신고 돼 가해자가 처벌 받는 경우도 있지만, 10대들은 아주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처럼 데이트 폭력을 인지하고도 혼자서 ‘속앓이’하는 경우가 많다. 기성세대들은 갖고 있는 '연애는 대학 가서 하는 것'이라는 선입견 탓에 10대들이 선뜻 도움을 청하기가 어려운 탓이다. 학교 현장에서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데이트 폭력 관련 교육은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최근 3년간 데이트 폭력 10대 피의자 800여 명 달해
옷 벗겨지고 정신 잃어도 폭행…성관계 시 인식 차이


위험성은 성인과 다름없는데 학교 예방교육도 없어
해외선 '10대 데이트 폭력에 관한 법' 따라 수업까지

 

연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말하는 ‘데이트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심각한 가운데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성적 정체성과 가치관을 형성하는 10대 시절에 성관계를 하는 경우,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실상 합의가 아닌 상황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역시 데이트폭력에 해당한다.

 

▲ 연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말하는 ‘데이트 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심각한 가운데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출처=tvN 영상 캡처>    

 

10대의 폭력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데이트폭력으로 붙잡힌 피의자 6003명 가운데 10대 청소년은 195명(3.3%)에 달했다.
지난 2016년에는 277명(3.1%), 지난해 315명(2.8%)의 10대 청소년이 데이트폭력으로 경찰에 붙잡혔다. 사실상 해마다 전국에서 300명에 가까운 10대 데이트폭력 사건이 발생하는 셈이다.
이 가운데 앞서 3월23일 부산에서는 헤어지자는 이유로 여자친구를 마구 폭행하고 감금한 10대가 경찰에 붙잡힌 바 있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부산 부산진경찰서에 따르면 피의자 A(19)군은 협박, 폭행, 감금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A 군은 같은 날 오후 10시께 여자친구인 B(19)양을 자신의 주거지로 끌고 가 계단에서 또다시 폭행한 뒤 감금하고 협박한 혐의도 받고 있다.
특히 A군은 B양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는 과정에서 B양이 폭행당해 옷이 벗겨지고 정신을 잃는 등의 증상을 보여도 아랑곳하지 않고 승강기에 억지로 밀어 넣어 끌고 간 것으로 확인되면서 사회적 공분이 일었다.


그런가 하면 지난 10월2일 전북의 한 대학교에서 옛 여자친구인 C(18)양을 상대로 “다시 만나자”고 설득하던 중 피해자가 이를 거절하자 폭행을 한 혐의로 D(19)군이 재판에 넘겨져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가 자신과 헤어지려고 한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폭행·추행해 경찰로부터 출석요구를 받았는데도 다시 피해자를 찾아가 협박했다”며 “어린 피해자는 범행 과정에서 상당한 불안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이는데 피고인은 피해를 복구하거나 용서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데이트 폭력


데이트폭력은 현직 연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폭력 및 상해를 일컫는 말로서, 우리나라에선 ‘치정폭력’이라는 용어로도 사용한다.

 

▲ 10대의 데이트 폭력은 매년 300여 건가량 신고된다. <사진출처=Pixabay>   


쉽게 말하면 ‘가정 폭력’에서 벌어지는 양상이 ‘미혼 남녀’ 사이에서 나타난다라고 이해하면 된다. 실제로 가정폭력 문서에 서술된 많은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피해자가 정신적으로 가해자에게 예속되거나 무기력 상태에 빠져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못하거나, 폭력을 못 이겨 공권력을 비롯한 타인 도움을 요청해도 연인간의 일이라며 개입하려 들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이 그렇다.


또한 가해자가 배우자나 부모, 자식이라는 구속력을 가진 가정폭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구속력이 덜한 연인 관계라는 점이 적극적 대처를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주변에서 진작 헤어지지 그랬냐, ‘좋아서 계속 만난 거 아니냐’, ‘남자가 되어서 여자에게 당하냐’는 피해자를 비난하는 발언이 어디선가는 나올 확률이 높다.


가정폭력과 마찬가지로 전근대적, 집단주의적 유교 문화와 가부장제, 정 문화가 짙게 남아있는 한국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사적 갈등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흔하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매우 심각한 사회 문제이다. 실제로 유독 우리나라에서 발생빈도가 높게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폭력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물리적 폭력부터 정신적 폭력까지 그 양상도 매우 다양하다. 헤어지자는 연인의 요청을 거부하거나, 이별하더라도 집요하게 스토킹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은데, 이 역시 명백한 데이트 폭력에 속한다.


아직까지는 데이트 폭력을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가볍게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당사자 역시, 남녀 모두 상당수가 주변에 알리거나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경우가 많다.


엄연한 데이트 폭력인 벽치기(일종의 공포 분위기 조성이므로 현실에서 당하면 무섭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후 강제로 키스, 연인의 행동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서 연인의 팔목을 거칠게 잡고 강제로 끌고 가는 행위가 미디어에서는 로맨틱하게 묘사된다.


또한 상대의 뺨을 때리거나 물을 끼얹는 등의 폭력 행위가 드라마에서 별 문제 의식 없이 넘어가거나, 연인(현재는 배우자)이 결혼을 요구하며 자신을 감금했다는 예능 출연자의 이야기가 마치 배우자가 출연자를 너무 사랑해서 일어난 프로포즈 해프닝처럼 가볍게 다루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가해자는 폭력임을 깨닫지 못하거나 폭력임을 알더라도 문제 의식을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사랑해서 그랬다, 욱해서 그런 거다, 상대방이 맞을 짓을 했다, 살짝 밀친 거다, 힘 없는 여자가 때린 것에 무슨 엄살을 떠느냐, 이 정도는 폭력도 아니다(특히 물을 끼얹거나 폭언을 행사하는 등의 정도가 덜한 행위 때) 등의 주장을 한다.


심지어 폭력의 피해자조차 폭력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며,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에 가해자가 폭력을 휘두른다고 여기는, 가정폭력 장기 피해자의 전형적인 왜곡된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과거 남편에게 구타 당한 아내가 자기가 죄가 있어 맞았다고 생각하거나, 드라마나 만화 등에서 종종 나오는 여성이 남성을 때릴 때 남성이 자기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고 그냥 참고 넘어가는 모습 등도 이에 해당한다.


일각에서는 데이트 폭력을 ‘학교 폭력’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 보는 경우도 존재한다. 학교폭력 가해자도 우정을 빌미로 상대방에게 집착을 하며, 피해자가 자신에게 벗어나려 시도할 때 회유나 협박 등을 이용하면서 괴롭힘의 강도가 심해진다.


이처럼 데이트폭력은 상대방을 폭행하는 등 물리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신체적, 정서적, 언어적, 경제적, 성적 폭력을 모두 포함하며 상대를 감시하거나 통제하려는 행위도 해당한다.


예컨대 휴대전화를 잠시 보자고 했을 때 상대방이 거절했음에도 지속해서 보자고 하는 것은 데이트폭력에 해당한다.
또 성관계 과정에서 상대방의 의사를 무시한 채 관계를 하는 것 역시 폭력에 해당한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따르면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 거주자 인터뷰 결과 성폭력은 가정폭력 발생 과정에서 적지 않게 나타나는 폭력의 유형으로 나타났다. 이는 가해자의 성적 만족을 넘어서 여성의 정신과 육체를 통제하려는 폭력적 목적을 가진다.


문제는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서울시와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가 서울시 소재 중학교 2학년 1103명, 고등학교 2학년 및 특수집단 청소년(보호관찰을 받고 있거나 쉼터에 사는 청소년) 12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3년 청소년 성 문화 연구조사’에 따르면 중학생의 37.8%, 고등학생은 46.3%는 연애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신체 접촉이 없다’고 응답한 9.3%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연애 관계에서 신체 접촉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첫 성관계를 했던 경로’에 대해,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는 응답을 제외하고 남자 고등학생은 ‘둘 다 원해서’가 19.0%로 가장 높았고 ‘내가 원해서’가 6.4%, ‘상대방이 원해서’가 6.1%의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여자 고등학생은 ‘상대방이 원해서’가 11.5%로 가장 높고, ‘둘 다 원해서’ 5.6%, ‘내가 원해서’ 1.0% 순으로 나타나 성관계를 하는 과정에서 상대방과의 인식 차이가 컸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관계자는 “부부 및 데이트 관계에서 발생하는 원치 않는 성관계는 폭력”이라면서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이어져 피해자가 임신 중단 결정을 했을 시 처벌받고 사회적 비난을 감내해야 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지적했다.

 

도움의 손길 시급


정부는 데이트폭력에 엄중대처한다는 방침아래 ‘데이트폭력 삼진아웃제’를 도입한 데 이어 경위와 폭력의 정도에 따라 1회 범행시에도 곧바로 구속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그러나 10대는 ‘학생이 공부해야지 무슨 연애냐’는 선입견 탓에 도움을 청하기가 어려워 데이트폭력에 방치되고 있다. 학부모나 교사들이 나서 피해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10대 데이트폭력의 양상도 성인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연락에 집착하거나 다툼이 있을 때 욕설을 하거나 고성을 지르다가 상대방의 사생활에 개입하는 정도가 늘면서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데이트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 성인과 비교해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10대는 연애보다는 공부에 집중해야 할 시기’라는 선입견에 연애 자체를 금기시하는 학부모나 학교가 적지 않아서다.


남자친구로부터 욕설·협박 등 데이트폭력을 겪은 E양은 “친한 친구 몇 명에게만 고민을 털어놨는데 친구들은 무작정 헤어지라고만 해서 별 효과가 없었다”며 “해결책 없이 헤어지자고 했다가는 더 큰 보복을 당할 거 같아 현재도 (남자친구와)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데이트폭력 피해자는 ‘가스라이팅’을 당하면서 피해 사실 자체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란 가해자가 의도적으로 상황을 조작해 피해자가 스스로의 판단력을 의심하게 함으로서 가해자에게 오히려 더 의존하게 하는 것을 심리적 폭력을 칭한다.


가스라이팅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외부에서 객관적인 조언을 들을 수 없도록 피해자의 대인 관계를 차단한다.


데이트폭력을 의심하는 상대에게 “네 친구들은 어차피 나에 대해 안 좋은 소리만 하지 않느냐. 그런 친구들은 만나지 말라”고 말하는 식 등이다. 일종의 정서적 학대다.


전문가들은 성교육처럼 교육을 통해 데이트폭력의 개념 등을 10대들도 명확히 알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 관계자는 “10대들은 어른들 몰래 데이트를 하는 경우가 많아 데이트폭력이 발생하기 시작했을 때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며 “교육을 통해 ‘이게 데이트폭력이구나’ 하고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부모나 교사들도 10대에 대한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피해당사자가 경험을 털어놨을 때 적극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트폭력연구소는 폭력 대처 방법에 대해 “큰 충격을 입은 피해의 경우 심리적 불안정이 심해지거나 외상후 스트레스 증상을 호소하기 쉽다”며 “이 경우 전문가나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아 심리 상담 및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여 만성적인 후유장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보폭피해가 우려되는 경우, 신변제도를 이용하거나 주변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방지책은 있나?


이처럼 매년 300건에 육박하는 10대의 데이트폭력이 일어나고 있지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데이트폭력 방지 교육은 찾기 힘들다. 1년에 15시간으로 지정된 성교육 시간 말고는 데이트폭력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성교육 주제도 임신·출산 등으로 좁은 상황이다.


그러나 미국은 20여개 주에서 ‘10대 데이트폭력에 관한 법’에 따라 학교장이나 이사 등의 주도로 매년 ‘데이트폭력 예방교육’을 한다. 해당 수업에서는 데이트폭력의 개념을 설명하고 실제 사례와 피해자의 대처방안 등을 배운다.


오히려 시민단체가 발벗고 나서고 있다. 여성단체인 서울강서양천여성의전화에서는 강서구에서 조성한 양성평등기금을 기반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데이트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여성의전화 관계자는 “데이트폭력의 특징과 문제점을 함께 살펴보는 것만으로 성평등 의식을 심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 관계자도 “10대들은 어른들 몰래 데이트를 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며 “교육뿐 아니라 학부모, 교사들도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냐아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해외사례에 대해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여성 대상 폭력에 대한 연구’ 보고서는 “데이트 폭력은 수사기관이나 사법기관들이 연인들 사이 사랑 싸움으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에서 벗어나 피해자에게 심각한 고통을 주는 범죄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며 “법적 보호장치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penf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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