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목동 이어 안산까지 '온수관' 자꾸 터지는 내막

땅속에서 흐르는 열수...지뢰 터지듯 우수수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8/12/19 [11:30]

고양, 목동 이어 안산까지 '온수관' 자꾸 터지는 내막

땅속에서 흐르는 열수...지뢰 터지듯 우수수

김범준 기자 | 입력 : 2018/12/19 [11:30]

최근 광역급 대도시들에서는 갑작스레 아스팔트 도로 등이 꺼지는 ‘싱크홀’ 현상으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와더불어 최근에는 땅이 꺼지는 정도가 아닌 아예 온수관들이 터져 사망자까지 발생하는 참사까지 벌어졌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 땅속 안전에 대한 우려감이 커져가는 상황이다.

 


 

일산 온수배관 파열사고…뜨거운 물 덮쳐 사망사고 발생
주무부처 ‘한국지역난방공사’ 측 대응이 부실했다는 지적


서울·부산서도 사고 이어져…20년 이상 된 온수배관이 문제
무계획적인 건물 공사로 인한 침하작용도 원인일 수 있어

 

지난 12월4일 밤 발생한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역 인근 온수배관 파열사고로 42명의 사상자들이 발생한 가운데, 이중 한 남성이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고 사망하는 등 땅 속 배관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 뜨거운 물바다가 된 백석역 인근의 모습. <사진출처=YTN 뉴스 캡처>    

 

공포의 땅속


이날 맞은편 차로를 지나던 손모(69)씨가 펄펄 끓는 고온의 물기둥에 참변을 당했다. 20년 전 부인과 헤어진 뒤 홀로 생활해 오던 손씨는 이날 결혼을 앞둔 둘째 딸, 예비 사위와 함께 백석역 인근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오후 8시 30분쯤 헤어졌다.
10여 분 뒤인 오후 8시 41분께 백석역 부근에서 한국지역난방공사 열 수송관이 파열되면서 100℃에 달하는 고온·고압 ‘물기둥’과 함께 토사가 인근을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은 “뜨거운 물기둥이 땅을 뚫고 솟아올라 사방으로 퍼지면서 손씨 차량을 덮쳤다”고 설명했다. 물과 토사 등이 강한 압력으로 차량 앞 유리를 강타하면서 깨뜨려 손 씨를 직격한 것으로 보인다.

 

▲ 일산 백석역 인근에서 일어난 온수관 파열 사고로 총 4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진출처=YTN 뉴스 캡처>    


백석역 인근 온수배관 사고를 직접 목격한 한 시민은 “(뜨거운 물이) 인도까지 차올랐다. 빗물이나 이런 게 아니라 라면 끓는 물처럼 100℃가 넘는 뜨거운 물들이 용암처럼 부글부글 막 끓어올랐다”라며 “계속 물이 넘쳐나는 상황이었다”고 당시 아비규환의 상황을 전했다.


사고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 한 경찰에 따르면 손 씨는 운전해 귀가하던 중 사고지점 근처에서 희뿌연 증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차량을 잠시 정차했다. 그 순간 갑작스러운 물벼락을 만났고 1차로 얼굴 등 중화상을 입었다. 고온·고압의 물기둥이 손 씨를 덮친 순간 그의 비명소리가 들리면서 앞 유리창이 깨지고 블랙박스 녹화도 함께 끊겼다.


이후 그는 곧장 뒷좌석으로 이동해 탈출을 시도했으나 계속 쏟아지는 물을 피하지 못하고 결국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손 씨는 전신 화상을 입은 채 주검으로 돌아왔다. 특히 얼굴이 변형될 정도로 심한 화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차량은 무너져 내린 도로에 빠져있었고, 차량 앞부분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된 상태였다.
손씨의 시신은 사고 발생 약 2시간 만인 오후 10시40분쯤 뒤늦게 발견됐다. 사고 직후 일대가 수증기로 뒤덮여 한치 앞이 안 보였기 때문.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딸 송모 씨는 “오후 11시50분쯤 경찰서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조금 전까지 웃으며 밥을 먹었던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면서 “내년 4월에 결혼하는데 아빠는 손자·손녀 보다 너희 둘만 잘 살면 된다고 자주 말씀해 주셨다”라며 울먹였다.
사위 박모씨도 “이번 주말 저녁을 먹기로 어제 통화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라며 갑작스런 장인어른의 죽음에 망연자실했다.


이 사고로 인해 인근 2800여 세대는 한파주의보가 발령된 가운데 난방과 온수가 11시간 넘게 끊겨 전기장판 등에 의지한 채 추위에 떨며 보내야 했다.

 

주무부처 관리부실


이처럼 다수의 사상자를 낸 온수관의 관리부터 사고까지의 과정에서 주무부처인 한국지역난방공사 측의 대응이 부실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 3월 온수관 사고가 난 경기도 성남시 분당을 조사하고 관리 기준과 절차가 부실한 사실을 확인했다.
감사원은 지난 9월17일 다른 지역에도 유사한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고 개선을 지시했다. 하지만 난방공사 측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무엇보다 사고가 발생한 후, 난방공사 측의 현장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난방공사 직원들이 신고가 접수된 지 40분이나 지난 뒤에 도착한 것이다. 도로 위로 쏟아져 나오는 온수를 차단하기 위해 밸브를 잠그는 데에는 1시간가량이 걸렸다.

 

▲ 파열된 온수관을 복구하는 모습. <사진출처=YTN 뉴스 캡처>    


난방공사 측은 지난해 11월 이 같은 사고의 복구와 구조 작업에 쓰기 위해 한 대에 3000만 원이나 하는 열 수증기 제어 장비를 사놓고도 사용하기 위한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무게 500kg인 이 장비를 화물차에 실어 나르기 위한 소형 크레인 같은 민간 장비 임대업체를 부르지도 않았다.


심지어 사고 장소에 등장한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은 사고 상황을 보고하면서 웃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황창화 사장은 지난 12월5일 오전 0시쯤 백석2동 주민센터에서 이재준 고양시장과 이윤승 고양시의회 의장, 시의원, 소방 등 관계 공무원들이 모인 가운데 보고회에 참석했다.


황 사장은 이 자리에서 “앞으로 이런 사고가 터지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면서 웃음 섞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자 이 자리에 참석한 한 시민이 공개적으로 “사람이 죽어 나갔는데 웃으며 보고하는 게 말이 되냐”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황 사장은 이후 “웃음의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며 “단지 너무나 갑작스러운 사고가 터졌고, 시장과 시민에게 죄송한 마음으로 발언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라고 해명했다.

 

이어지는 사고


경기도 고양시 백석역 열수송관 파열 사고에 이어 서울시 목동에서도 파열됐고, 부산 해운대구에서도 온천수 관로가 터지면서 땅 속 배관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파열 원인으로 낡은 배관이 지목되면서 산업통상자원부가 나서 20년 이상 된 노후 배관에 대한 긴급 점검에 나서기로 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사고가 발생하면서 ‘1기 신도시’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 조성된 1기 신도시는 성남 분당·고양 일산·안양 평촌·부천 중동·군포 산본 등으로 경기 지역 대표적인 인구 밀집지역이면서 백석처럼 20년 이상된 온수 배관이 깔려 있다.


고양시아파트입주자대표회 관계자는 “백석 온수 배관이 공사 측 발표대로 내부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파열된 게 사실이라면 유사한 사고가 노후화된 신도시 어디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불안해했다.


이번 백석역 인근에서 파열된 850㎜ 열수송관은 1991년 매설된 것으로 파악됐다. 때문에 27년 된 낡은 배관의 용접 부위가 녹슬어 엄청난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파열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고현장을 확인한 고양시 관계자는 “배관의 용접 부분이 오래돼 녹이 슬어 관로 내부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파열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밝혔다.


한국지역난방공사 고양지사 관계자도 “정확한 원인은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현재로서는 장기간 사용한 열수송관이 문제인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고양시아파트입주자대표회 관계자는 “백석 온수 배관이 공사 측 발표대로 내부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파열된 게 사실이라면 유사한 사고가 노후화된 신도시 어디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불안해했다.


백석역 열수송관 파열 사고 다음날인 지난 12월5일 오전 9시쯤 부산 해운대구 중동 모 호텔 옆에서 56℃에 이르는 온천수가 뿜어져 나와 도로 일부가 물에 잠겼다.


조사 결과 이날 사고는 땅속에 매설된 온천수 관로가 부식으로 파손되면서 발생했다.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은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


또한 이 사고에서 일주일 지난 12월11일에는 서울 양천구 목동 아파트 인근에 매설된 온수관이 파열돼 17시간 동안 인근 1800여 세대에 온수와 난방 공급이 중단돼 주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에너지공사는 복구작업을 벌여 오후 5시 30분쯤 온수 공급을 재개했지만 1차 파열 지점에서 약 20m 떨어진 곳에서 추가 파열이 발견됐다. 복구 작업은 지난 12월12일 2시쯤 완료돼 오전 3시부터 각 세대에 온수와 난방 공급이 재개됐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은 추위 속에 17시간 넘게 불편을 겪어야 했다.

 

파열의 원인


이처럼 땅속 기반시설이 낡아 사고로 이어지면서 산업통상자원부는 노후된 열수송관이 깔려 있는 일산·중동·산본·평촌·분당 등 1기 신도시를 대상으로 긴급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산업부가 파악하고 있는 20년 이상 된 노후 관로는 전체 32%인 686㎞에 이른다. 15~20년 된 관로는 322㎞(15%), 10~15년은 관로는 359㎞(16%), 10년 미만은 797㎞(37%)를 차지하고 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2월5일 “온수관 파열사고는 설치된 지 20년 이상 지나며 노후화한 게 원인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1주일 동안 1998년 이전 설치한 온수관을 긴급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사고 당일 한파로 온수 사용량이 급증해 수압이 높아지면서 용접 부위 등 취약 지점이 터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어 “오래된 열수송관은 연결고리 관련 공법이 적용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라며 “이를 중심으로 점검을 벌여 체계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라고 밝혔다.


연세대학교 방재안전관리센터장인 조원철 명예교수도 지난 12월5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관이 1991년부터 매설된 것이기 때문에 27년 정도 됐다”며 “상수도관이 아니고 온수관이기 때문에 노후화가 빨리 진행이 된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상수도관을 5년, 10년, 15년, 20년, 25년, 30년 사용시기 별로 조사를 해 봤더니 안에 스넥이라고 하는 찌꺼기가 굉장히 두껍게, 심한 건 한 2.5cm 정도까지 끼었더라. 그 찌꺼기라는 것이 단순하게 문지를 정도가 아니고 주물로 만든 철처럼 아주 딱딱하다. 잘못 건드리면 손이 찢어진다”며 “이러면 관이 굉장히 거칠어지고 관이 단면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압력이 높아진다. 높아지면 약한 부분이 터질 수 있는 개연성이 굉장히 높다. 이게 노후화라고 하는 가장 기본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계속 뜨거운 물만 보내는 게 아니고 중간중간에 관을 청소를 하면서 점검을 하는데 이 점검이 제대로 규칙적으로 됐는지 안 됐는지 한번 확인해야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조 교수는 “그 주변에서 사전에 조금씩 누수가 되면서 싱크홀이 발생됐을 수도 있다. 싱크홀이 발생되면 그 접합 부분의 모든 받치고 있던 흙들이 다 쉽게 나가버린다. 그래서 위에서 하중이 오면 그 접합부 부분이 약해져서 잘라질 수가 있다”며 “싱크홀 등 그런 징후가 있었으면 신고를 받아서 조사를 했으면 막을 수도 있지 않나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상수도관이면 겨울이 되면 흙이 딱딱해진다. 그러면 지표면에 차량이 다닌다든가 해서 진동이 올 경우 바로 관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관에 손상을 주면서 이번 같은 일이 발생될 수가 있는데 현재 날씨로는 그 영향은 아닌 것 같다”며 “다만 관의 흙 덮인 두께를 ‘토피’라고 하는데 토피가 1m 50cm밖에 안 된다. 표준 설계 규정이 1m 50cm인데 저희는 항상 얕다고 2m 이상은 돼야 된다고 주장해왔다. 위에서 오는 충격을 막아주는 효과는 굉장한 차이가 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토목 전문가들은 관로 점검 보다 관로가 묻혀 있는 지역의 지질조사가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토목공학 전문가는 “백석역 주변은 흙이 많이 쌓인 지역으로 지하수가 내려가면 흙이 침하되고 그 주변에 관로가 있으면 당연히 끌려가게 돼있다”면서 “지질이 나쁜 지역에 무계획적인 건물 공사로 인한 침하 작용으로 온수관이 터진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후 관로의 점검과 교체 보다는 지질조사를 통해 제대로 된 원인이 밝혀지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지금이라도 지질의 특성에 맞는 공사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고, 자치단체에서도 지반의 특성을 고려해 공법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고양시아파트입주자대표회 측은 “이번 사고는 지하 시설물 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자칫 큰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라며 “주민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지하 매설물에 책임이 있는 모든 기관이 나서서 정밀하게 점검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교체 시급해


이에 정부는 일산과 경기도 부천시 중동, 군포시 산본, 안양시 평촌, 성남시 분당 등 1기 신도시에 90년대 초중반 설치된 온수관을 우선 점검키로 했다.


1기 신도시에는 20년 이상 된 온수관이 총 686㎞ 설치돼 있다. 국내 온수관(2164㎞)의 32%에 해당한다. 분당 지역은 90년대에 매설된 배관이 전체의 71.6%나 된다. 서울도 배관 77.5%가 90년대에 매설됐다.


난방공사는 내구성이 약한 관을 교체하는 작업을 신도시 일대에서 진행하고 있지만 온수 공급을 해야 하는 겨울철엔 공사가 불가능해 속도가 더디다.


난방 배관 사고는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 2012~2016년 총 13건의 사고가 발생했는데 원인은 대부분 노후화 때문이었다. 난방공사 관계자는 “20~30년 전 온수관을 처음 매설할 때 사용한 강관은 최근에 쓰는 관보다 부식률이 높고 내구성이 떨어지는 자재여서 더 취약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penf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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