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이계홍의 노·변·정·담

“미국은 애걸복걸하는 북한을 왜 그토록 외면할까?”

글/이계홍(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12/26 [09:21]

칼럼니스트 이계홍의 노·변·정·담

“미국은 애걸복걸하는 북한을 왜 그토록 외면할까?”

글/이계홍(칼럼니스트) | 입력 : 2018/12/26 [09:2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연내 서울 답방 가능성을 두고 온다, 안 온다로 말이 많더니 시기적으로 연내 방문이 어렵다는 것으로 나오자 이번에는 연말 방문 연막을 피웠다며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논조들이 나오고 있다. 언론 스스로 연일 ‘온다, 안 온다’며 자가발전 해놓고 날짜가 지나가자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는 양 화풀이하듯 정부를 비난한다. 사실 그런 분위기를 풍긴 정부도 일정 부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렇다고 김정은이 답방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나? 오히려 갈등이 증폭되고, 복잡해질 수 있다. 북한을 보는 눈이 너무나 다르고, 이해가 달라서 자칫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 일부 세력은 그렇게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 우리가 북한을 알면 얼마나 알고, 또 김정은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북한 집단을 악마화하고 증오하고 저주하는 것으로 70년 체제를 살아왔다면 이제는 제대로 북한에 대해 알고 비판할 것이 있으면 비판하고, 이해할 것이 있으면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인 태도가 아닐까.

 


 

철천지 원수였던 미국과 베트남 관계에 눈이 휙휙 돌 지경
베트남도 공산국가인데 뭐가 꼬여서 북한만 외면하고 압박?


남한 냉전세력 미국 이익에 부합…미국도 북한과 거리 두기
문재인 정권 성공하려면 양심세력·시민사회 하나로 묶어내야

 

1. 베트남·미국 관계를 보며


필자는 그동안 주술처럼 강요된 북한의 호전성과 억압구조, 김일성 세습독재에 이를 갈아온 사람이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세뇌되었다. 그래서 ‘악의 축’ ‘쳐부숴야 할 괴뢰집단’으로 알고 살아왔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가, 아닌가를 떠나 그렇게 규정해야 마음 편했다. 혹 북한에 대해 우호적인 발언이라도 할라치면 불이익을 당하니 애초에 그렇게 규정하고 살았다. 공포감 때문인지 학교와 언론에서 제공한 정보에 순치되었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내 서울 방문이 어렵다는 쪽으로 결론이 나오자 '연말 방문 연막을 피웠다'며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논조들이 나오고 있다.


△북한 사회는 자식이 부모를 반동이라고 신고하는 집단들이다 △농부들이 일하는 밭에 인민군이 총을 메고 감시한다더라 △비밀경찰이 따라붙어 부부생활도 제대로 못하고, 헛소리 하면 아오지 탄광으로 보낸다 △북한 전체가 감옥소이며, 반동으로 몰리면 총살형이다 △북한 전체가 반인권 정치범 수용소다 △일성 일가를 위해 전 인민은 노예생활을 한다 등.


이렇게 교육받고 자랐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는 북한을 제대로 알고 그에 바탕하여 증오하는가. 북한에 대한 선입견이 모두 옳은가. 반대로 남한의 파쇼성과 호전성은 없었던가.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가 믿는 것만 믿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던가.

 

가해자들이 남북 화해 제동


자고로 우익독재가 더욱 잔혹한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보아왔다. 해방 직후부터 벌어진 자국민 학살과 광주학살, 최근에 드러난 부산 형제복지원 학살 등. 비판세력을 용공 좌경으로 몰아 얼마나 많은 사람을 가두고 고문했던가. 북한의 집단 수용소를 얘기하지만 우리 감옥 역시 이런 억울한 사람들로 넘쳐나지 않았나. 강제된 침묵과 협박, 그것이 북한의 집단과 차이가 있으면 얼마나 있겠나. 그런데 그런 가해자들이 색깔론으로 남북 화해에 제동을 걸고 도처에 덫을 놓고 있다.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는 북한의 호전성이다. 이 점은 북한도 처절하게 반성하고 사과해야 할 것이다. 반면에 북한에 대해선 어떤 왜곡과 조작도 통용되었다. 그동안 김일성 사망 기사만도 여러 건이 되었다. 우리 신문 보도대로라면, 김일성은 좀 과장해서 열 번도 더 죽었다 깨어났다를 반복했다. 그는 본의아니게 부활한 종교인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신문이 오보라고 사과한 적이 없다. 북한에 대한 가짜뉴스를 남발해도 무한 자유가 허용되었다. 오히려 그런 편파·왜곡·조작 보도를 비판하면 좌빨로 몰아붙였다. “북이 좋으면 평양으로 가라”는 협박이 나온다. 이런 몰상식이 지금도 버젓이 나온다.


북한의 악마화는 교육보다 언론 때문이라는 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늘날 교육은 어느 정도 균형성을 갖고 있지만 언론은 예외다. 북한이 하는 짓은 모두 나쁘고, 같잖으며, 야수의 탈을 썼다는 관점이다. 그래서 북한은 믿을 수 없고, 증오스러운 존재다.


물론 북한이 건강하고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나라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북한에 대해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노력 없이 오직 대결 프로파간다에 빠져 악마라고 규정한다면 그것 또한 올바른 태도라고 할 수 없다.

 

미국과 베트남 격세지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을 두고 구세력이 벌써부터 남남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김 위원장의 행보가 우리의 국가이익과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냉철한 가슴으로 생각해볼 마음은 없어 보인다.


화해의 측면에서 베트남을 한번 보자.
한국군은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남인을 약 4만 명 사살했다. 당시 한국군은 5000명 전사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공산화를 막기 위해 우리 군을 파병한다고 했지만 반전시위가 극심했던 미국 젊은이들을 대신해 파병한 일종의 용병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당시 정부와 언론은 공산화의 도미노를 막기 위해, 자유를 지키기 위해 파병한다고 했다. 지금 보다시피 베트남은 공산화했다. 우려했던 공산화 도미노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평화로워졌다.


베트남 전쟁 중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사실도 여러 건 밝혀졌지만 베트남은 한국과 수교하고, 지금은 우리의 제3 교역국이 되었다. 베트남 신부가 가장 많이 국내에 들어와 한국의 총각과 결혼해 아름다운 다문화 가족의 일원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 구원(舊怨)으로 보자면  우리는 그들의 원수 아닌가. 나라의 미래를 위해 화해하고 협력해온 사이, 어떤 우방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미국은 어떤가. 1964~1975년 11년간의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 전사자는 5만8318명, 부상자 15만 명, 실종자 1600명이다.


스웨덴 웁살라 대학이 발표한 베트남인 사망은 145만8050명이다(1995년 베트남 정부의 발표는 전투 사망자 110만 명, 민간인 사망자 200만 명으로 집계). 베트남 인구 9000만 명 중 약 600만 명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신음하고 있고, 매년 기형아가 수천 명씩 태어난다. 이들 피해자는 삶의 질이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전해진다.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한국군보다 훨씬 더 많이 발생했다. 그리고 약 800만 톤의 폭탄을 베트남에 투하했다. 폭탄 1톤에 1명이 죽거나 다쳤다고 가정한다면 약 800만 명의 인명피해가 있었다고 추계할 수 있다. 그래서 사망자 집계가 무의미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쟁의 참혹성은 현재 앓고 있는 고엽제 피해자가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피부에 고름이 질질 흐르고, 뼈가 삭거나 비틀리고, 육신이 변형된 2세들이 태어나고 있는 현실을 보는 것만으로도 전쟁의 참혹성을 알 수 있다.


미국 재향군인국의 자료에 확인 가능한 양으로 8360만리터의 고엽제가 베트남 밀림지대에 살포되었다고 발표되었다.
미국과 베트남 간의 11년 전쟁은 가장 추악하고, 잔혹한 전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종식 20년 만인 1995년 7월11일 양국은 공식 국교를 맺고, 이 시간 현재 굳건한 교역국으로 성장했다. 상호협력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철천지 원수가 이렇게 백팔십도 태도를 바꿔 우의를 다지는 모습은 눈앞이 휙휙 돌 지경이다. 국제사회란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현실을 직접 보여준다. 우리의 남북 관계와 비교하면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국교 수립 후 베트남은 미국의 유해 송환 및 전투 중 실종자 수색·발굴에 협조했고, 미국은 베트남 내의 불발 지뢰 및 폭탄을 제거하는 일에 협조했다. 고엽제와 다이옥신의 보건 및 환경에 대한 공동 조사를 위한 양해각서(MOU)에 서명하고, 베트남 측 피해자 지원에 나섰다.


2006년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를 계기로 조지 부시 대통령이 베트남을 공식 방문하고, 경제적 관계를 우방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2008년 두 나라는 정치·안보·국방, 인도적 지원의 협력 강화를 합의했다. 미국 정부는 과거 미군 기지가 위치했던 지역의 오염을 치유하기 위해 예산을 투입했다. 군함도 베트남 항만에 기항하고 있다. 중국을 겨냥하기 위한 포석이지만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맹군이 된 양상이다. 상호 이익을 위해 이렇게 변화하고 있다.


미국·베트남 무역협정이 2001년 발효된 이후 미국은 베트남의 제2 수출 시장으로 부상했다. 베트남은 미국의 배상보다 교역 증진을 요구했고, 그 결과 지금 눈부신 경제발전상을 보이고 있다.

 

남한 냉전세력과 미국


그런데 미국은 왜 그토록 수교하자고 애걸복걸하는 북한을 외면할까. 핵을 보유한 채 수교를 바라기 때문일까. 이념적으로 서로 맞지 않기 때문일까. 인권을 탄압하는 국가여서 그럴까. 워험하기로 하다면 인구 9000만 명의 통일 베트남보다 북한은 2300만 명으로 조그만 나라라서 상대적으로 덜 위험하고, 베트남도 똑같은 공산국가인데 뭐가 꼬여서 그럴까. 핵을 포기하겠다는데 미적거리며 먼저 패를 까라고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정상회담을 가지긴 했지만, 여전히 미국의 네오콘은 대결적이고, '코피 작전'을 선호하는 양상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미국은 여전히 북한을 ‘악의 축’으로 상정하고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고 북한으로 들어가는 돈줄을 막고, 북한과 교역하는 나라를 제재하는 등 압박정책을 강구했다. 북한을 붕괴시키고자 군사적인 행동도 불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가지긴 했지만, 여전히 미국의 네오콘은 대결적이고, ‘코피 작전’을 선호하는 양상이다.


여러 이유 중 한 부분은 남한의 냉전·대결 세력 때문이라고 본다. 국내의 냉전세력이 북한에 여전히 대결적이라는 데 미국이 유의하는 측면이 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미국의 우호세력이다.


남한의 냉전세력은 미국의 군산복합체에 기대어 권력과 부와 명예를 쌓은 이익공동체다. 미국은 이들을 쉽게 배신할 수 없다. 그들이 도덕적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미국의 이익에 충실히 복속되면 어떤 누구라도 좋은 것이다. 70년 동안 미국의 혀처럼 놀아주니 미국으로서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그런 대가로 그들은 기득권을 쌓고 모든 것을 거머쥐고, 자식들에게까지 권력과 자본이 세습되었다. 성골 신분제의 한 축을 단단히 쥐었다.


북한 김일성 집단의 세습 못지않은 자본·권력·명예까지 세습한 세력이 독재를 찬양하고 파쇼성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니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비극은 일정 부분 이런 데서 찾아볼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이 민족의 기상과 대륙을 향한 꿈을 펼치기엔 너무나 강고한 국내외 세력이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다. 이들이 개과천선 해서 돕는다고? 말로는 그런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가는 길이 틀린 길이 아니기 때문에. 하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훼방 놓고 딴지 걸고 다리 걸고 넘어뜨리려 한다. 지난 시절의 과오보다 해먹은 것에 대한 미련 때문에 다시 힘을 모아 문재인 정권을 넘어뜨리려 할 것이다. 그동안 쌓아온 기득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니 분이 날 것이다. 나라의 미래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세력이니 사사건건 방해하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태생을 갖고 있는가. 지역주의에 기대어 이익을 담보해줄 정치인을 배출하고, 70년의 적폐인 정경유착, 관치금융, 족벌경영과 이를 비호하는 수구보수 언론과 동맹체제를 갖춘 세력이다. 이것으로 끼리끼리 해먹고 챙겨주다 보니 세상 만물의 변화라는 것 자체가 귀찮다. 이런 체제 아래서 특권·반칙·탈법을 자행하며 군림했으니 햇볕이 있는 곳에서는 생명력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음지를 좋아한다.


그게 바로 적폐인데, 이것을 해결하겠다고 하면 정치보복이라고 동맹을 맺은 언론이 총대를 매준다. 바로 ‘천민독재’ ‘부패 카르텔’의 한 전형이다. 진보정권은 돈을 만들어 보지 못했고, 만들더라도 구세력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데 주저할 것이니 적대적으로 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해결방법이 무엇인가. 방해세력과 함께 가겠다고? 그게 가능한가? 좌초를 학수고대하는데? 따라서 방법은 단 하나다. 제 민주세력이 결집해야 한다. 상식을 말하는 양심세력과 시민사회가 굳건히 연대해 돌파해 나가야 한다. 문재인 정권의 성공 여부는 시민사회와 제 민주세력을 여하히 하나로 묶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혼자 다 가지겠다고 욕심을 부리면 한 순간에 훅 갈 수 있다. 그러면 10년 전, 20년 전으로 역사가 퇴행하고, 남북관계는 또다시 긴장과 대결이 일상화할 것이다.

 

2. 문재인 정권 물어뜯기


역량 부족인가. 수구세력의 저항 때문인가. 남북문제 이외 뚜렷한 대안과 정책과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정치적 경제적 아젠다를 선점한 것도 없어 보인다. 한마디로 능력 부족을 보이고 화석화된 ‘수꼴’들에게 포위된 양상이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곤 혁신인 줄 알았는데 이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러는 가운데 대통령의 지지율은 80% 선에서 반 토막이 나버렸다.


이런 틈새를 노린 것일까, 보수 언론이 연일 정부 비판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DJ 정권 시절의 ‘쓰리 홍’ 비리 사건, 노무현 정권 시절의 ‘박연차 비리’의 판박이가 재현되고 있다. 다만 지금은 금품 수수라기보다 인사청탁, 권력남용 등이 차이라면 차이다. 그러나 비판의 강도는 그때보다 더하다. 지지율이 떨어지면 이렇게 폭로기사들이 속출하고, 정권을 ‘식물화’로 몰아가 버린다. 애정 있는 비판이 아니라 무너뜨리겠다는 식이다. 그래서 요즘 보수 언론의 보도행태와 정권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쓰리홍 비리’ 사건은 김대중 대통령의 세 아들이 로비스트에 연루돼 몇 억씩 받았다는 의혹이다. 박연차 사건은 노무현 정권 시절 박연차 태광산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 사건이다. 이 사건은 진위 여부에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도덕성에 맹폭을 가하는 언론보도로 나라가 흔들릴 정도였다.


그런 보도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형평성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범죄의 경중을 따져서 시시비비를 가려주어야 한다. 만원 훔친 자나 억대를 훔친 자나 도둑질한 것은 마찬가지라고 똑같이 나쁘다고 하면 누가 더 이익을 보는가. 당연히 억대를 훔친 자가 이익을 보는 셈이다. 보수언론의 보도행태가 이랬다.


언론의 이해관계에 따라 눈감지 말아야 할 거대 부정과 구조 비리는 눈감고, 이해를 같이하지 않은 정권에 대해서는 큰 흠이 아닌데도 가차없이 물고 뜯는다. 그래서 정치적 편향성과 편파·왜곡 보도라는 문제를 낳았다.


당연히 1만 원  훔친 자는 1만 원 훔친 만큼의 책임을 물어야 하고, 수천억 빼돌린 자는 그에 상응하는 죄상을 묻는 보도를 하는 것이 형평에 맞다. 이해관계에 따라 눈감지 말아야 할 거대 부정과 비리는 눈감고, 이해를 같이하지 않는다고 해서 쓰레기통까지 헤집어 소소한 것까지 폭로한다는 것은 언론의 사명을 저버린 처사다.


공화당 정권에서부터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으로 이어져오는 보수정권의 부정과 비리는 ‘비리 창고’ 그 자체였다. 액수도 천문학적인 숫자였다. 천 억 단위가 보통이고, 때로는 나라를 말아먹을 조 단위까지 횡행했다. 방위산업 비리에서부터 토목건설 비리, 금융 비리, 군산 비리, 인사 비리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때 여론시장을 지배한 유력 보수 언론은 무엇을 했나. 보수정권이 내놓고 비리를 저지른 것을 보고도 눈을 감거나 외면했다. 그러면서 이익을 함께 나누었다. 광고를 얻고 인사청탁을 교환했다. 반대로 진보정권에서는 얻을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비우호적일 수밖에 없다. 몇 억 단위의 비리에도 현미경 들여다보듯 꿰뚫으며 가차없이 밟는 이유다. 지면을 상업주의로 전락시키거나 사유화한 셈이다.


지금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지면을 온통 부패공화국처럼 일방적으로 몰아간다. 물론 그것은 일면 권력에 저항하는 용기있는 신문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을 강한 정권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인재 풀도 풍부한 것 같지 않다. 그것은 그들의 한계이자 책임이지만, 다만 도덕성에 기반해 정부를 끌고 가고, 투명사회로 이끄는 정부라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부정과도 거리가 멀어 보인다. 상대적인 비교를 하면 분명 투명하다.


문제는 이 정권은 구세력의 집요한 공격을 받을 것을 예상했어야 했다. 저들이 어떤 세력이고, 또 어떤 동맹군을 형성하고 있는가. 그래서 DJ정권 시절이나 노무현 정권 시절의 학습효과를 인지했어야 했다. 가일층 깨끗한 인사와 정의로운 정책 집행, 흠 잡히지 않는 제도 도입과 운영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하고 있는데도 물어뜯는다고?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돌파할 힘이 없는가? 변화를 추동하는 국민적 에너지가 돌파할 힘이 아닌가. 그 에너지를 모을 힘이 없는가.


다만 디테일을 어떻게 구사하느냐가 문제일 것이다. 제한된 인재풀로는 다양한 디테일을 개발할 수 없다. 순혈주의는 일방으로 가는 힘이 있을지언정, 다원화 사회를 이끌 동력으로는 약하다. 폭넓은 전문가 집단과 시민사회운동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결국은 통합과 소통력이다. 동질적 정치세력과의 연대도 필요하다. 그런데도 자기들끼리 해보겠다고? 그러면 또다시 먹히고 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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