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타고 다시 가본 1970년대 그때 그 사건

남편 바람기 잡으려다 “몸 뺏기고…돈 뺏기고”

정리/최태민(객원기자) | 기사입력 2012/03/06 [10:01]

타임머신 타고 다시 가본 1970년대 그때 그 사건

남편 바람기 잡으려다 “몸 뺏기고…돈 뺏기고”

정리/최태민(객원기자) | 입력 : 2012/03/06 [10:01]
40대 여인 어설픈 미행 남편에 들켜 매 맞을까 도움 청한 게 화근

내막 캐자며 여관 끌고가 딴짓 “폭로한다” 으름장 놓고 딸까지 버려

세상에는 희한한 사건들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난다. 세상을 발칵 뒤집은 사건이 있는가 하면 신문 사회면 한 귀퉁이를 가까스로 차지했다가 세인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마는 사건도 많다. 엽기적인 사건에서 웃기는 난센스 사건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사건들 뒤에는 또 그 나름대로 비화도 수두룩하다. 시곗바늘을 30~40년 전으로 되돌려 신문에 나지 않은 1970년대 그때 그 사건 속으로 들어가보자.

남편의 바람기를 잡으려던 어리숙한 부인이 가짜 형사에게 걸려들어 더할 수 없는 치욕을 당하고 고이 기른 딸마저 제물로 만들었다. 남편의 바람기를 잡으려는 그 간절한 마음이 인면수심의 가짜 형사에게 좋은 미끼가 되어 어이없는 가정파탄을 불렀다. 뉘우침 없는 남편, 통곡하는 모녀의 스토리를 1978년 11월26일자 <선데이서울>을 통해 들여다봤더니….

한 가정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경찰에 구속된 가짜 형사는 서울 영등포구 구로공단을 무대로 건달생활을 하던 전과2범 한규일(가명·당시 22세). 피의사실은 공무원 자격사칭·강간·공갈·강간치상.

피해자는 서울 구로동 K(당시 41세·상업)씨, 그의 아내 C여인(당시 41세) 그리고 딸(당시 15세).

사건의 발단은 1978년 11월5일 하오 11시쯤, 구로시장 앞길에서. 가정주부 C여인은 쫓기듯 달리다가 길 가던 한규일에게 신변보호를 요청.

C여인은 남편이 모 화장품 회사 외판원 아가씨와 바람 피운다는 정보를 듣고 그 뒤를 추적하다 남편과 마주치자 매 맞을까 두려워 달아나던 길. 곰을 피한다는 게 호랑이를 만난 셈.

한규일은 C여인에게 자기가 남부경찰서의 이×× 형사라고 말해 일단 안심을 시켰다. 잠시 이야기를 들어 사정을 알게 된 한규일은 이야기를 좀더 상세히 들어야겠다며 C여인을 인근 W여인숙으로 끌고 들어갔다.

서슬이 퍼런 한규일의 태도에 배운 게 없어 법을 모르는 C여인은 겁이 더럭 났다. 남편의 바람기를 막고 아가씨와의 관계를 끊어놓자는 게 목적이지 잡아넣자는 생각은 없었기 때문. 삽시간에 허물어지는 C여인의 태도를 본 한규일은 “원만히 해결할 테니 내 말을 들으라”며 수작을 걸다가 반항하자 끝내는 어거지로 겁탈을 했다고.

1시간쯤 지난 뒤 통금시간이 임박하자 한규일은 C여인에게 30만원을 요구했다. 그 용도는 남편 K씨와 외판원 아가씨가 정을 통하는 현장을 증거로 잡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

느닷없이 벌어진 일이라서 당장 그런 돈을 줄 수 없었던 C여인은 지닌 돈에서 숙박비를 제한 5000여원을 건네주었다. 몸은 빠져나갔으나 30만원을 주기로 약속하고 집까지 가르쳐 준 터인 C여인은 매일같이 한규일에게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버젓이 집으로 찾아와 소란을 피우리만큼 뻔뻔스런 한규일은 다음 날 1만7000원을 빼앗고 여관에 끌고 가 또 그 짓. 이번에는 더욱 무서운 공갈을 했다. “내일까지 돈을 안 해오면 나와의 관계도 남편에게 폭로하겠다”고.

다음 날 한규일은 돈을 받으러 다시 C여인 집에 갔다. 거기서 C여인의 남편과 부딪쳤다. 뻔뻔스럽기 그지없는 한규일은 “왜 간통을 하느냐”고 으름장을 놓고 눈감아 달라고 사정하자 술집으로 끌고 가 융숭한 향응을 받았다.

한규일을 형사로 믿은 남편 K씨도 당했고 등굣길에 조사할 게 있다는 바람에 따라간 딸도 당했다. 한규일은 그런 일이 있은 뒤에도 C여인 집을 드나들며, 또는 C여인을 밖으로 불러내어 짐승 같은 소행을 거듭했다.

C여인은 그런 한규일을 자기 실수를 은폐하느라 거듭 받아들였으나 딸은 달랐다. 이것이 한을 쇠고랑차게 한 실마리.

1978년 11월11일 낮, 남부경찰서 형사계 이모 형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 내용은 “당신이 형사면 형사지, 간통사건을 수사하면 했지, 왜 남의 딸까지 망쳐놓느냐”는 격렬한 항의.

어이없는 항의를 받은 이 형사는 전화를 건 K씨를 만났다. 이 형사가 가해자가 아님이 밝혀지고 자초지종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 형사를 자처한 20대 남자(한규일)에게 아내가 당한 이야기, 자신이 당한 이야기 그리고 딸이 당한 이야기.

딸은 학교도 가지 않고 고민하다가 말도 하지 못하고 쪽지에 편지를 써놓았다. 그 편지로 가족의 피해전모를 알았고 그래서 이 형사에게 항의하기에 이르렀다는 사연이었다. 어이없는 범인, 어이없는 파탄, 어이없는 항의의 연속이었다. 이래서 다각수사로 범인을 압축하여 잡고 보니 한규일. 한은 1976년 3월 준강도 혐의로 바로 남부경찰서 이 형사의 손에 잡혀 2년 동안 징역을 살고 이해 3월에 만기 출감한 사람. 그때 기억했던 이 형사의 이름을 그대로 써먹은 것.

한은 폭력행위, 준강도 등 전과2범으로 출감 후 구로공단을 무대로 줄곧 건달 노릇을 해왔다. 고향이 전남 강진.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중퇴했으나 혈육이라곤 칠순의 아버지뿐.

72년 아버지와 서울에 올라와 공원으로 일하면서 삶을 꾸려오다 1973년 폭력행위로 구속되어 징역 1년을 살았고, 그때부터 더욱 비뚤어지기 시작하여 1976년에는 준강도로 다시 2년 징역을 살았다. 징역을 살고 나와 일자리를 얻지 못한 한은 마침내 더욱 무거운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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