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X파일 비운의 정치가 안철수 집중탐구

정계입문 2년간 지지율…롤러코스터처럼

김상래(브레이크 기자) | 기사입력 2014/11/17 [10:30]

정치 X파일 비운의 정치가 안철수 집중탐구

정계입문 2년간 지지율…롤러코스터처럼

김상래(브레이크 기자) | 입력 : 2014/11/17 [10:30]
차기 주자 지지율 압도적 1위 달리다 6위→4위 중위권에서 전전
‘새정치’ 기치 내걸고 정치판 불구덩이 뛰어들었지만 감당 버거워
2번의 선거 과정도 좋지 않고 결과도 완패…국민신뢰 완전히 잃어
다시 국민들 속으로 들어가면 제1야당 대권주자…‘삶의 정치’ 화두로

▲ ‘안철수 바람’을 등에 업고 화려하게 정치판에 등장한 안철수 의원은 거듭된 추락 끝에 대권주자 지지도 6위까지 처져 있다가 최근에는 가까스로 4위에 턱걸이를 하고 있다.     © 사건의내막
성공한 정치인, 좋은 정치인의 조건으로 여러 가지가 거론된다. 리더십, 도덕성, 인맥 등 어느 것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정치인이 최종적으로 성공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행운’ 또한 빠질 수 없는 한 가지 조건으로 여겨진다. 어떤 정치인은 생각지도 못한 다른 이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지지부진하던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기도 한다. 또한 선거에서 경쟁자가 자신의 실수로 자멸하며 쉽게 당선되는 일도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 역시 존재한다. 다른 조건을 일정 수준 갖췄음에도 주변 인물이 문제를 일으키거나 결정적인 승부에서 아쉽게 패배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한때 무대 중심에서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하다가 무대 뒤로 사라진 ‘비운의 정치인’을 골라 그간의 행적과 실패요인 등 비하인드 스토리를 집중분석한다.


‘7.8%, 4위’. 이는 리얼미터가 지난 11월10일 발표한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현재 지지율과 순위다. 2014년 11월3일부터 7일까지 5일간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안 의원은 박원순 서울시장,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새정치연합 의원의 뒤를 이어 4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권 주자 1위서 6위로
안 의원은 서울시장 후보에 이름이 오르내리던 지난 2011년에는 50%대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이후 대선 후보로 급부상하면서 지난 3월까지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등 명실상부한 유력 대권 후보로 올라선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지난 6개월간 거듭된 추락 끝에 6위까지 처져 있다가 최근에는 가까스로 4위에 턱걸이를 하고 있다. 이 같은 지지율 하락 추세는 정치인 안철수의 위기를 한눈에 보여준다.
차기 대권 후보 1위로 정치권에 입문해 거침없이 탄탄대로를 달릴 것만 같았던 그는 이후 제1야당의 대표에 올랐다. 하지만 정치권의 높은 벽을 이겨내지 못하고 지지를 잃어가다 현재에 이르게 됐다. 지금까지 안 의원보다 더 극적인 변화를, 그것도 단기간에 겪은 정치인이 있었을까.
한때 ‘안철수 바람’이라 불리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너무도 단기간 안에 정상에서 나락까지 떨어지는 불운을 겪어야만 했다. 정계에선 안 의원의 이러한 추락을 놓고 개인의 능력 부재뿐만 아니라 상황적 불운 또한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새정치’ 바람을 등에 업은 안 의원은 지난해 4월 노원병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당선되며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무소속으로 지내던 그는 지난해 11월28일 신당 창당 준비위원회 성격의 ‘국민과 함께하는 새정치 추진위원회’의 출범을 알리며 정치 세력화 추진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단순히 출범만을 선언했을 뿐 위원회의 인적 구성이나 창당 시기 발표 등은 이뤄지지 않아 향후 과정에서 험로가 예상됐다.
일각에선 안 의원의 섣부른 정치 입문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많은 국민들의 성원은 ‘CEO 안철수’에 대한 것이지, ‘정치인 안철수’에게 보내는 게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결국 신중치 못한 정계 입문 결정을 통해 사실상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든 셈이다.
정치권의 텃세 역시 초선인 안 의원이 감내하기엔 벅차 보였다. 안 의원이 세력화를 시도하던 당시 여권에서는 “도대체 ‘새정치’가 무엇이냐”며 연일 공격이 이어졌다. 민주당에서도 “야권 분열”이라며 안 의원을 견제하는 등 여야 모두 안 의원의 등장을 달가워하지 않는 모양새였다.
더욱이 안 의원이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공언한 신당 창당 문제도 계속 삐걱거리자, 정치권에선 “안철수는 끝났다”는 의견이 팽배해지기 시작했다.
민주당과 합당…安도 결국 기성정치인?
결국 신당 창당이 어려워지며 수세에 몰린 안 의원은  “구태정치의 전형적 모습”이라며 거부하던 민주당과의 합당을 결정,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당명을 바꾼 뒤 김한길 의원과 함께 당의 공동대표에 올랐다.
이 같은 결정은 ‘기존의 구정치인들을 몰아내고 개혁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던 국민들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됐다. 국민들은 “100년이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며 민주당과 다른 노선을 걸을 것으로 예상됐던 안 의원이 덩치가 큰 민주당에 자신을 의탁하려 하는 게 아니냐면서 더욱 그에 대한 실망감을 밖으로 표출했다.
이와 함께 기존 새정추에 있던 인물들의 이탈 또한 이어졌다. 윤여준 당시 의장, 박호군·홍근명 공동위원장 등이 당시 민주당과 함께할 신당에 합류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민적 지지는 물론, 자신과 새정치 노선을 함께 걸어갈 동료들마저 이탈함에 따라, 정치권에서 그의 입지는 더욱더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당 대표 활동을 하는 동안에도 측근들의 부재로 작은 위기조차 그에게 더 큰 어려움으로 다가왔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특히 정치권에서 얕은 인맥으로 인해, 창당 과정부터 겪기 시작한 어려움은 이후로도 그를 계속해서 괴롭혔다.
안 의원의 고전은 시기적 문제도 존재했다. 그는 정치 입문 이전 나름의 준비가 있었겠지만 처음 경험하는 현실 정치 세계에서 이미 계파 형성이 이뤄져 있는 정당의 대표로서 감각을 익히기도 전에 너무 빨리 두 개의 큰 선거를 이끌어야만 했다. 또한 그는 당내에서 기존의 계파에 몸을 실을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그는 “계파를 청산하고 새정치를 펼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자신의 선언을 뒤집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새롭게 창당한 새정치연합 앞에는 6·4 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방선거 또한 안 의원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안 의원은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선거에 공천 없이 임할 것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당 내외 반발의 벽에 부닥쳤고 결국 자신의 주장을 뒤엎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안 의원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지 못하는 무기력함, 힘을 실어줄 동료들의 부재와 함께 정치 능력의 한계를 보이며 차츰 지지율을 잃게 됐다.
당대표 사퇴로 이어진 두 번의 선거
무공천 공약은 안 의원 새정치의 핵심이자 첫 번째 공약이었다. 하지만 기존에 오랜 기간 존재하며 자신들만의 틀이 잡혀 있는 당내 상황에서 안 의원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들은 이미 확고히 계파 분화가 이뤄져 있었기 때문에 안 의원의 독주를 견제했고 그는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지 못했다. 이처럼 자신만의 당을 만들지 못한 안 의원의 고전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안 의원은 자신의 공약을 뒤집은 것에 더해 공천 과정에서 기존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여 더욱 여론의 빈축을 샀다. 자신의 측근인 윤장현 새정추 전 위원장을 여론조사 1·2위를 다투던 이용섭 의원과 강운태 당시 시장을 제치고 광주시장 후보로 전략공천 한 것이다.
이후 선거기간 동안 윤 후보의 지원유세에 집중적으로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였고 당내 중진급 의원들에게도 이를 독려했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안 의원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타 계파의 중진의원들이 광주 지원유세를 도운 것은 겉으로는 그에게 협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 의원이 미끄러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을 하기도 했다.
지방선거 이후에는 7·30 재보궐 선거가 이어졌다. 안 의원은 지방선거에 이어 다시 원칙 없는 전략공천을 이어갔다. 안 의원을 비롯한 지도부의 전략공천에 새정치연합 내의 반발은 이어진 수순이었다. 여당과의 경쟁이 아닌 당 내분에 염증을 느낀 여론은 새정치연합에 15곳의 선거구에서 4:11의 참담한 패배라는 결과로 대답했다. 새정치연합은 자신들의 전략이었던 야권 후보 단일화, 정권 심판론이 통하지 않으며 텃밭인 호남지역에서도 패배하기에 이르렀다.
두 번의 선거에서 안 의원은 완전히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다. 과정도 좋지 않았으며 결과 또한 완패였다. 안 의원은 공천 폐지의 공약이 지켜지지 않으며 시작부터 삐걱거렸고 공천 과정에서도 구정치인의 모습을 답습하며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또한 중진급 의원의 전략공천 실패로 일부가 은퇴하는 결과를 낳기도 해 원성을 샀다.
안 의원의 몰락은 겉으로는 자신이 자초한 면이 커 보이지만 본인의 경험 부족에 ‘상황적 불운’이 더해진 복합적 이유로 인한 실패였다. 안 의원은 국회 입성 후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제 1야당의 대표 자리에 올랐다. 거대 야당을 이끌어가기엔 경험과 배경이 부족한 ‘정치 신인’에 불과했다.
안 의원은 당내의 상황 또한 호의적이지 않은 불운을 겪기도 했다. 특히 중도적 성향을 띠는 안 의원에게 자리를 뺏긴 강경파이자 구주류로 분류되던 친노계는 호시탐탐 부활의 시기를 재고 있었고 안 의원을 견제했다. 그들은 지방선거 당시에도 자신들이 대선에서 내걸었던 공약인 기초공천 폐지 주장을 뒤엎었고 안 의원이 최종결론을 내리는 것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했다.
안 의원은 재보선 다음 날 패배의 책임을 지고 공동 대표직에서 사퇴했다. 이후 한 달간의 칩거 생활을 했다. 외부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안 의원은 지난 9월 정기국회와 동시에 국회에 등원하며 칩거를 마치고 최근 다시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정중동 속 재기 모색
그는 지난달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지난 2년간의 정치생활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실제 경험해보니 부족한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며 “그러한 값진 경험을 바탕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겠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또한 안 의원은 새정치연합 창당 과정을 언급하며 “거대 양당 중 한 축을 개혁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며 “단기간의 개혁은 과욕이었다”고 평가했다. 안 의원이 직접 작성한 이 글에는 정치 입문 이후의 반성과 고민이 담겨 있었다.
안 의원은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의 비대위원으로 당내 계파 안배를 명목으로 공동 당 대표를 지냈던 김한길 의원과 함께 오르내렸지만 본인이 고사했다. 이에 안 의원이 재보선 패배 이후 일선 복귀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또한 당의 전면에 나서길 꺼리는 안 의원이 더욱 적극적인 러브콜을 기다리거나 당을 떠나 신당을 만들 수도 있다는 분석이 존재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10월 중순 안철수 의원이 민생과제 발굴과 정책, 입법이 맞물린 ‘삶의 정치’를 시작으로 ‘새정치 2기’를 열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개인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이 정책과제를 제시하고 안 의원이 직접 민생현장을 찾은 뒤 양측이 대안을 마련해 입법으로 연결시킨다는 구상이다.
안 의원은 지난 10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대선 때부터 지금까진 내게 맞지 않는 역할을 했다. 이제부턴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며 “전문 분야인 경제와 교육에 집중해서 우리 정치가 국민들에게 해주지 못한 일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안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직을 사임한 이후 상당 기간 공식적인 활동을 자중하면서 대외적으로 정치적인 말을 극도로 아꼈다. 안철수의 새정치연합 세력과 민주당 세력과의 통합을 이루고 난 후 뜻하지 않게 일어난 일련의 매끄럽지 못한 과정과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에 대한 깊은 성찰과 숙고의 시간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안 의원은 ‘정책 중심의 정치’를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현장을 방문해 간담회 등 여러 형태로 국민 목소리를 듣고, 현장에서 들은 문제점을 정책네트워크 내일과 의원실에서 세미나·토론회·심포지엄 등의 활동을 통해 정책화까지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새정치’를 실제로 구현하는 모습을 보여 정치적 영향력을 회복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경제문제 중에서도 서민과 정보통신기술(ICT)에 중점을 둘 예정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특히 ICT는 안 전 대표의 ‘전공분야’라서 더욱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분야다.
안 의원은 이를 위해 최근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을 재정비했다. 정연호 전 새정치연합 최고위원을 소장으로 내정한 상태고, 지난 2012년 안철수 대선 캠프에서 정책실장과 기획실장을 역임한 김형민 전 실장을 부소장으로 영입했다.
안 전 대표의 측근은 지난 10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서민과 경제 현장을 방문하고 정책을 개발하는 투트랙 행보를 계획하고 있다”며 “이르면 11월 초순이 될 수도 있고, 늦어지면 20일 이후로 미뤄질 수도 있다”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이 측근은 “주제는 주로 경제분야를 다루게 될 것”이라며 “서민경제와 민생, 침체 상태에 빠진 대한민국 경제가 활로를 찾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색하기 위해 현장도 방문하고 공부도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뉴 안철수 플랜’이라는 말이 나오지만 안 전 대표 측에서는 아직 향후 계획에 대한 명칭을 확정하지 않았다.
안 의원은 최근 의원실 인력에도 변화를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동안은 상대적으로 정치 경험이 짧은 인사들로 보좌진 그룹을 운영해 왔는데 정치 현장경험이 많은 서양호 전 김한길 공동대표 비서실의 부실장을 영입해 그간 부족했던 정무 기능을 보강했다는 것.
대언론 접촉도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안 의원은 최근 언론사별 연쇄 회동을 하고 있으며, 자신에 대한 기사를 쓴 기자에겐 직접 문자 메시지까지 보내 ‘피드백’을 주고 있다고. 한때 기자들 사이에서 ‘언론 공포증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돌았던 것을 감안하면 ‘괄목상대할 만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실제 안 의원은 최근 <경향신문> <세계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경제와 교육개혁을 가로막았던 것이 정치라 생각해 정치쇄신을 얘기했는데 되레 오해를 받았다”면서 “대선 때부터 지금까진 내게 맞지 않는 역할을 했다. 이제부턴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말해 주목을 끌었다. 그러면서 안 전 대표는 “정치개혁 얘기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면서 “전문 분야인 교육에 집중해 우리 정치가 국민에게 해주지 못한 일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와 여의도 정가에서 최근 안 의원의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가능성이 확산되고 있다. 옛 민주당과 합당 후 소멸된 ‘새정치’에 대한 철학이 복원되지 않을 경우 2017년 대권주자 반열에도 오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내년 2월 실시될 예정인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안 의원은 당내에서 비중있는 역할을 맡기 힘들어 보인다. 현재 비례대표를 포함한 130명의 국회의원을 보유한 제1야당에서 안 의원의 우군은 거의 없다.
친노 64명과 비노 66명 등으로 분석되는 당내 계파싸움의 틈바구니 속에서 안 의원은 친노와 비노 모두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마치 다른 초선의원과 비슷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어 보인다.
결국 현재 안 전 의원의 발언이나 정치적 입지를 종합하면 섣부르게 탈당을 결행하지 않지만, 다시 국민들 속으로 들어가면 자신도 제1야당의 대권주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내년 2월 전대에서 비노가 참패하고 친노 일색의 지도부가 꾸려져도 묵묵하게 경제와 교육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다 보면 기회는 찾아올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어쨌거나 안 의원은 자신에게 생소할 수 있는 정치권에서 불운이 겹치며 짧은 기간 동안 롤러코스터를 탄 듯 오르내렸다. 거듭된 실패에 현재는 자신의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제 겨우 2년차인 만 52세의 초선 의원일 뿐이다. 그동안의 경험 부족은 다른 초선 의원들이 쉽게 겪을 수 없는 당 대표 역임과 두 번의 선거 이후 차근차근 채워 나가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앞으로 그가 어떤 길을 걸을지, 어떤 인물을 만나 다시 일어설지 모르는 일이다. 정중동 속에서 기회를 엿보며 비운의 정치 행보를 끝낸 2년차 국회의원 안철수의 정치 인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scourge2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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