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3년 최후의 격전지 애록고지 스토리가 등장하는 영화 ‘고지전’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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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멀리 육지의 꼬리인 마산포가 아슴푸레 눈에 들어오고…
“과연 살아생전에 저 땅을 밟게 될 날이 오기나 할 것인가?” “옛다, 배고픈 중생에 보시하누먼, 하하.”
용운은 땅에 떨어져 병아리의 모습이 반쯤 드러난 곤달걀을 보며 망설이고 있었다. 마침 좌판 밑에 웅크리고 있던 발바리가 기어나와 달걀 냄새를 맡으려 했다. 용운이 저도 모르게 몸을 숙여 달걀을 집으려는 순간 발바리 놈이 낼름 물곤 좌판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용운은 침을 찍 뱉곤 남대문시장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멀리 서울역 쪽에서 기적 소리가 들려왔다. 남대문시장 안은 북새통이었다. 떡 목판을 앞에 놓고 앉은 아줌마를 비롯하여 풀빵 장수, 팥죽 장수, 수제비 장수, 김밥 장수 등이 쭉 늘어서 있었다. 인절미를 사러 간다던 엄마 생각이 났다.
왼편으로 국수를 삶아 파는 노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손님 대부분이 그 주변의 짐꾼들로 여기저기 지게가 세워져 있었다. 주인 아줌마가 솥뚜껑을 열자 안개 같은 김과 함께 구수한 멸치 국물 냄새가 물씬 피어올랐다. 용운은 정신이 혼미해진 채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한 짐꾼에게서 돈을 받던 아줌마가 넋을 놓고 서 있는 용운을 힐끗 바라보더니 대번에 눈초리가 샐쭉해졌다.
“야, 니 뭐꼬?”
용운이 멈칫거리자 여자는 냉큼 물바가지를 움켜잡았다.
“저 문디 같은 자슥아, 물벼락 맞기 싫거덩 빨랑 꺼지라카이!”
문득 용운은 양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그제야 며칠 동안을 흙바닥에서 뒹군데다 먼지와 눈물로 범벅된 얼굴에 물 한 방울 찍어 바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구나 구겨질 대로 구겨지고 더러워진 옷에 검정 고무신…. 그야말로 거지나 다름없었다.
비척거리며 그곳을 빠져나가려는데 누군가 용운을 불렀다.
“얘, 꼬마야.”
돌아보니 풀빵 장수였다. 아까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던 모양으로 그는 풀빵을 하나 집어주었다. 용운은 황급히 받아들고 그곳을 빠져나와 허겁지겁 먹었다. 꿀맛이 따로 없었다. 간에 기별도 안 갔지만 그나마 먹고 나니 살 것 같았다.
이젠 엄마를 찾아봐야 할 일이었다. 서울 시내를 쉬지 않고 헤매며 행인들의 얼굴을 살폈다. 검정 치마를 입었거나 뒷머리 모습이 엄마와 흡사하다 싶으면 급히 앞질러 가서 얼굴을 확인했다. 마치 넓은 풀밭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이나 막연했지만 그것말곤 다른 방법이 없었다. 확실한 것은 서울역에서 헤어졌으니 그 주변 어딘가에 틀림없이 엄마가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어린 소년의 머릿속에 부산, 대전, 제주도… 하는 식의 광범위한 지역은 미처 자리잡혀 있지 않았고, 따라서 어머니가 이곳을 벗어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엔 상상이 미치지도 않았다. 그는 뱃속이 찰랑거리도록 물배를 채워가며 거리를 헤맸다. 상가나 주택가는 물론 정류장도 빠짐없이 뒤졌는데, 어쩌다 엄마와 비슷한 여인이 얼굴도 미처 확인하기 전에 전차에 올라타 사라지기라도 하면 그 미련이란 두고두고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귀신 소문
신새벽이었다.
모두들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을 때였다. 감각을 잊은 고막을 강제로 마구 헤집고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기상!”
복도가 온통 우렁우렁 울렸다. 새벽잠을 깬 군상들이 희미한 어둠 속에서 이리저리 꿈틀거렸다. 눈을 겨우 뜬 용운은 천장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순간 그는 잠자리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쓰레기 하치장이나 다리 밑, 혹은 처마 밑에서 잔뜩 웅크린 서글픔도 없었고, 노숙자의 스산함도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아 참, 여긴 수용소지. 그래, 난 지금 언제 나갈지도 모르는 감옥섬에 잡혀 와 있는 거야.’
용운은 현실을 떠올리듯 중얼거렸다.
“사장 오기 전에 빨리빨리 움직여! 찍혀서 얻어맞지 말고 모포 정돈들 잘해!”
반장 백곰이 소리질렀다. 용운은 급히 일어나 다른 원생들이 하는 것을 보며 담요를 개었다. 반장의 지시를 기다릴 것도 없이 옥사 안팎의 청소가 시작되었다. 호롱불 빛이 희미한 실내는 사물이 겨우 보일 만큼 어두웠지만 밖은 좀 나은 편이었다.
바다의 새벽은 육지와 달라 어떤 신선감마저 느끼게 했다. 밤새 내린 보슬비 탓에 땅의 감촉이 촉촉하게 느껴졌다. 아직 잠이 덜 깬 혼미한 기분 때문인지 원생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묵묵히 청소만 했다. 1개 사동에 5개 반이 바글대는 가운데 제각기 습관적으로 담당구역을 쓸고 닦을 뿐이었다. 마침내 청소 검사를 했다. 마루는 얼마나 닦아댔던지 티끌 하나 없이 얼굴이 비칠 정도였다.
청소를 끝내고 세면장으로 향할 때쯤엔 아침 햇살이 환히 내려 비치고 있었다.
세면장은 숙사에서 열댓 발짝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그건 커다란 우물이었다. 용운이 뒤늦게 갔을 때 그곳은 이미 만원이었다. 바글대는 원생들 틈에서 빈 세숫대야 하나를 발견하고 집으려는 순간이었다.
“어라? 요 쥐만 한 새끼가 겁도 없이 어디다 손을 대?”
뒤에서 누가 용운의 엉덩이를 세게 걷어찼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콧구멍이 돼지코처럼 큰 원생이 칫솔을 입에 문 채 눈알을 부라리고 있었다. 손잡이가 부러져 나뭇가지를 대고 고무줄로 동여맨 궁상맞은 칫솔이었다.
“애새끼, 보아하니 초짜로구만. 너 몇 반이야?”
“3반입니다.”
“쥐새끼 놈아, 그럼 니네 반 걸 써야지 아무거나 손대면 어떡해!”
그는 강팍한 소리로 말하고 나서 칫솔질을 계속했다. 팔이 움직일 때마다 그의 목에 목걸이처럼 매달린 비눗덩이가 이리저리 춤을 춰댔다. 용운은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세숫대야는 반별로 두 개씩뿐이고, 그것은 고참 서열대로 사용 중이었다. 용운은 이만 닦고 세수는 수건에 물을 축여 대충 문지르는 것으로 끝냈다.
잠시 후 충심사 전원에 대한 인원 파악과 어제와 똑같은 식사가 쳇바퀴 돌 듯 진행되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사장 왕거미가 또 전원을 집합시켰다. 점호 시간이 됐다는 것이었다. 신입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졌겠지만 용운은 그 분주함에 숨돌릴 틈이 없을 지경이었다. 원생들은 다시 본관 앞 운동장으로 향했다. 머리를 빡빡 깎이고 숙사를 배정받던 그곳이었다.
이윽고 모든 원생이 도착하여 질서 정연한 대열을 갖추자 주임 선생이 외쳤다.
“차렷!”
그 소리와 함께 선감학원 원장이 연단 위로 올라섰다. 그는 칼날처럼 날카롭게 줄이 선 군복을 차려입고 군모를 눌러쓰고 있었는데, 거기엔 대령 계급장이 붙은 채 햇빛을 받아 되튕겼다.
먼저 인원보고가 시작되었다. 충심사 차례가 되자 왕거미 사장이 거수경례를 척 올리고 나서 우렁차게 외쳤다.
“총원 115명, 사고 무, 현재원 115명. 이상 점호 집합 끝!”
각 사의 보고가 끝날 때마다 원장은 머리를 약간 끄덕여 보였다. 마지막 사까지 보고가 끝나자, 다시 주임 선생의 구령에 따라 애국가 제창이 있었고 곧 원장의 훈시가 이어졌다.
“친애하는 원생 여러분! 선감도에 또다시 보람찬 하루의 태양이 밝았습니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노력하면서 지난날을 반성하고, 나아가 여러분에게 쏟는 조국의 성의와 관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용운이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선감도는 먼 옛날 고려 때부터 선감미도(仙甘彌島)로 불리어 왔는데, 배를 만든 곳이라 하여 선감사 또는 선감도(船監島)라고 했다는 설도 전해지는 섬이었다. 옛날에 속세를 떠나 선경에서 살던 신선이 이 섬의 높은 산 위에 솟은 바위 밑 계곡에 내려와 맑은 물로 목욕했다고 하여 선감도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도 있었다. 그런 신비스런 섬에 이런 지옥 같은 강제수용소가 들어서 있다니 놀랄 노릇이었다.
원래 선감원은 일제 식민지시대인 1943년에 조선총독부가 부랑청소년 감화시설로 세웠다. 하지만, 실제로는 독립군의 자손을 수감하고 또한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가미가제 등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쓰거나 또는 군수공장에 보냈던 곳이었다.
해방 이후 ‘선감학원’으로 개칭하고 전쟁 고아들을 수용하는 사회복지 시설로 그 역할이 바뀌었는데, 말이 학원이지 사실은 강제노동수용소와 마찬가지였다. 수용소는 다섯 개의 사동과 여러 개의 부속 건물로 되어 있었다. 충심사를 비롯하여 각심사, 세심사, 일심사, 정심사 등의 숙사와 사무실, 양호실, 식당, 창고, 축사, 목공실 따위였다.
총 원생 수는 1000여 명에 가까웠다. 전쟁고아 출신의 부랑아가 태반이었지만, 그중에는 소년원 등에서 이감시킨 범법자도 얼마쯤 섞여 있었다.
원장의 훈시가 끝나자 부원장이 올라서서 작업 지시를 내렸다. 작업 분담, 목표량, 주의사항 따위였다. 염전 작업에 나가는 인원을 제외한 원생들에게 내려진 임무는 나무 심기와 영농장의 똥오줌 뿌리기 작업이었다. 어제 들어오면서 본 그 염전은 수용소가 운영하는 것인 모양이었다. 작업 지시가 끝나자 주임 선생의 구령에 따라 선감원의 원가(院歌)를 불렀다.
‘신선이 노닐던 선감도 청산 기슭에
새 삶의 학원이 자리잡았네
푸른 물결에 해맑게 씻긴
바닷가 조약돌 같은 우리 선감 형제들
푸른 하늘 별들도 우리하고 놀지요
아~ 선감학원~
참된 갱생의 요람이 되리’
원가를 부른 다음 그 길로 모두 작업장으로 향했다.
충심사는 영농장 쪽이었다. 변소에서 인분을 퍼서 넓은 채소밭에 날라다 뿌리는 일이었다. 사장의 통솔로 작업이 개시되었다.
생전 처음 져보는 똥지게가 용운에겐 벅차기만 했다. 옥사의 변소에서부터 채소밭에 이르는 수백 미터는 곧 분뇨통을 짊어진 원생들의 행렬도 메워졌다. 길 여기저기에는 반장들이 몽
둥이를 들고 서서 오가는 원생들을 다그쳐댔다.
“형, 참 이상하지? 누가 복도에 똥을 싸놓는다는 게 정말일까?”
“얼마 전부터 이 섬에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대”
“그래서 밤에 변소 가기 무서워서 그냥 복도에 싸고 토끼는 거래” “너희들의 똥이니 더럽다고 생각 마라. 야, 빨랑빨랑 움직여!”
정신없이 닦달을 받으며 울퉁불퉁한 길을 한참 왕복하자 휴식 명령이 내렸다. 용운은 기진맥진하여 밭둑 위에 아무렇게나 퍼질러 앉았다. 때마침 시원한 한 줄기 바닷바람이 불어와 땀 밴 이마를 훔치고 지나갔다.
눈앞에 펼쳐진 짙푸른 해면에 투명한 햇살이 내려 비치고 있었다. 그것은 물결을 타고 수천 수백 마리의 은빛 고기떼처럼 눈부시게 파닥거리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바다 멀리 육지의 꼬리인 마산포가 아슴푸레 눈에 들어왔다. 용운은 저도 모르게 눈초리가 붉어졌다.
“아아! 언제쯤 저 바다를 건너 다시 저 땅을 밟게 될까? 과연 살아 생전에 밟게 될 날이 오기나 할 것인가?”
불현듯 멀리 바라보이는 마산포에서 어머니의 모시 적삼과 젖가슴 냄새 같은 게 맡아진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찾아 헤매어도 만날 수 없던 엄마가 왠지 저기 마산포 어귀에 와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대로 마산포를 향해 목청껏 불러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가슴이 싸하게 시려 오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용운은 생각했다. 이곳에서 내 편이 돼 줄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는 것을, 나를 지킬 사람은 오직 나 자신뿐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눈물부터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용운은 애써 마산포를 외면하며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동작일 뿐 솟아나는 눈물을 참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엄마….”
용운은 입속으로 살며시 불러보았다.
급히 옷소매로 눈물을 찍어내는데 누군가가 슬그머니 다가와 붙어 앉았다. 피에로였다.
“형!”
힘든 곳에서 만난 유일하게 친한 사람이어서 반가웠다. 그는 용운보다 세 살 위였다.
“구름아, 정말 힘들구나.”
▲ 집단수용소 이야기가 등장하는 영화 ‘나비’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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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언제부턴가 용운을 ‘구름’이라고 불렀다. 용운(龍雲)의 뜻을 풀면 ‘구름을 헤치고 승천하는 용’이라면서 씩 웃었다. 그러면서 “용처럼 잘났다고 나서지 말고 구름 속에 숨어서 때를 기다려야 해” 하고 도사 같은 표정으로 일러주었다.
“형, 힘들지?”
“신세 망쳤다. 고아원이라도 감사하며 그냥 있어야 하는 건데, 괜히 채플린 흉내나 내다가….”
피에로는 후회막급한 듯 한숨을 토해냈다.
“형, 우린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되는 거야? 언제고 내보내주기는 할까?”
“아무래도 희망이 절벽 같다. 그러나 절벽엔 희망이 있지. 그러니까 탈출을 하다 죽고 그러지.”
“탈출?… 아니, 무슨 수로 탈출을 해?”
“몰라. 하여간 저쪽 너머에 민간인 마을이 있는데, 거기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공동묘지가 있대더라.”
“공동묘지?”
“응. 꺾인 소망의 잔해가 묻혀 있겠지.”
피에로가 멀리 마산포로 눈길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
“저렇게 빤히 보이는데도 갈 수가 없으니….”
“형, 저기까지 거리가 얼마나 될까?”
“왜? 헤엄이라도 쳐서 건너게?”
“누가 그런댔어?”
“하긴 뭐, 중요한 건 해골이니까….”
피에로가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렸다.
“뭐?”
표정이 다소 굳어 있던 피에로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너가 좋아하는 사람의 해골을 한번쯤 생각해봐. 난 이따금 채플린의 해골을 생각한단다. 그나저나 참, 복도 담당도 못할 노릇이야.”
“형, 참 이상하지? 복도에다 누가 똥을 싸놓는다는 게 정말일까?”
“그렇잖아도 누가 얘기해 주더라. 지금은 별로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일이 많았대.”
“아니 왜?”
“귀신 소문 때문이래.”
“뭐, 귀신?”
“얼마 전부터 이 섬에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는 거야. 그래서 밤에 변소 가기 무서워서 그냥 복도에다 싸고 토끼는 거래. 히히….”
“무서워. 어, 어떤 얘긴데?”
“석 달 전, 바람이 무척 심한 날이었댄다. 마을 사람 박씨가 잠이 안 와서 방파제로 나갔는데 말이지, 가까운 데서 애끓는 여자의 울음소리가 바람에 섞여 들려오더란다. 이상하다 싶어 사방을 둘러봤더니 흰 소복을 걸친 여자 하나가 방파제 위에서 고개를 파묻고 슬피 울더래지 뭐야.”
“동화같애.”
“아냐, 직접 겪었대. 생각해 봐. 으스스한 늦가을 밤에 소복 차림으로 찬바람을 맞으면서 울고 있으니 좀 기분 나쁘겠냐? 그런데 미련한 박씨는 작은 섬이라 분명 아는 사람일 거라 생각하고 다가갔댄다.”
“응?”
“다가가서 누구냐고 몇 번을 물었나 봐. 그런데 아무리 불러도 여자는 계속 울기만 하면서 무릎 새에 파묻은 얼굴을 들지 않더랜다. 할 수 없이 바짝 다가가서 어깨를 흔들자 여자가 울음을 뚝 그치고 천천히 고개를 들더래. 근데 어쨌는지 아냐?”
“응?”
“혼비백산한 박씨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는데, 그 뒤로도 헛소리만 하면서 송장처럼 앓아누워 있었대더라. 죽지 않은 게 다행이래.”
용운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사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형, 그런데 요새는 어째서 그런 애들이 뜸하다는 거야?”
“지금은 불침번들이 수시로 감시한다는데 쉽겠냐? 또 시작할래나 보다.”
그의 말에 맞춰 큰 소리가 들려왔다.
“휴식 끝!”
피에로가 일어서며 재빨리 말했다.
“몸조심해야 해. 여러 번 찍히면 감화원으로 보낸다잖어.”
전라도의 외딴 섬에 지독한 악종들만 끌어모아 수용하는 무시무시한 감화원이 있다고 했다.
<다음 호에 계속>